-內容美를 중점으로(2)
向石 李 東 浩 (조각가)
경주 덕동땜 준공비 -78, 농업진흥공사-
독립군총사령 朴商鎭 義士동상 -82, 울산시-
탈고되지 않을 군마상 -91, 천마공원 (주)-
새마을금고 신축연수원조형물 -99, 천안시-)
예술은+ 모방감각에서 출발하고, 모방의 궁극목표는 그 사물에 대한“바로 그것과 흡사해”라는 묘사의 탄성관계이다.
존재하는 유무형(有無形)의 사물에는 생물과 무생물이 있다. 그 구별은 유형의「생물이 살아 있고, 무생물은 죽어 있다」는 상태이기 보다 「스스로 움직인다, 못 움직인다」의 현상이다, 무형의 정신도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의 현상은 정신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무생물이라고 보는 지구가 죽어 못 움직이는 상태가 아니라 자체가 움직이는 사물이어서 「살아 움직이는 지구」에 생물과 무생물이 적절히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움직인다」라는 생동현상은 ㉠ 지점에서 ㉡ 지점으로 위치를 변경하는 과정이며, 그 목표는 보다 발전적으로 성장하여 변모되기 위함이다.
조물주는 아담과 이브를 흙으로 사람형상을 만들고 생기를 주니 이 인간이 100m를 10초에 스스로 달리는 생동(生動)의 생물을 창조하였고, 조각가 로댕은 아담 이브가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동의 감(感)을 무생물질 청동으로 창작하였다.. 이 점이 현재로는 인간의 한계성이다.
또한 솔거(率去)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노송(老松)을 황룡사 금당 벽면에 그렸더니 생물노송으로 착각한 참새가 충돌하였다
불후의 조각과 그림의 미술은 물론 건축을 남겼고 또한 시인 미켈란젤로는「돌 속에 생명이 꿈틀거린다 」라고 했다. 이 역시 조각의 본질인 생동감을 극명하게 강조한 것이다. .
따라서 조각에서 바로 그것이야! 라는 감탄은 생동감」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의 이미지를 표출함에 있어서, 석굴암 불상의 생동감을 정중동(靜中動)으로 조형하였으므로 돌(石)이지만 이 상아 앉은 부처님에게 기원과 예배를 하게된다,
민속박물관에서 보는 밀납 마네킹은 처음에 흡사 「산 사람」같이 보이지만 점차로는 죽어 움직이지 못하는「사체(死體)의 섬뜩한 느낌」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마네킹 같은 느낌을 주는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불상의 화강석 덩어리가 과연 우리 중생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 두 불상과 중국 운강석불의 조형적 비교는 차후에 살피고자 한다
경주1C에서 시내진입 서라벌도로를 국제관광도시의 대로로 86년 확장 할 당시, 숙원사업을 뒤로한 이 사업순위에 시민의 반대와 비난도 무릅쓰고 추진, 개통되었고 이제는 그 타당성을 수긍한다.
그런데 대로에 있는 나정교(蘿井橋) 난간양편의 양 종점에 위치하는 조형물에서 그 좌대 만이 설치되었던 까닭은 예산부족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본 교량의 난간디자인과 조형물구상에 관계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시민으로서, 또 관계한 입장에서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외의 객(客)에게 각인될 경주시 가시인상의 첫 관문인 이 교량에 바람직한 조형물이 빨리 조성되어야 할 텐데.. 그러나 조성하지 않았다.
그 후 10여년 지난 90년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숫(♂) 석사자 4구가 동일한 모습으로 설치되었다. 그런데 이 석사자들은 사자의 것 모습만 흉내냈을 뿐, 경주를 수호하려는 당당한 위용과 생동감이 없음은 고사하고 그 빈약한 양감과 규모는 주위의 광활한 공간에 짓눌려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설치되어 있음에 놀랐다. 그러나 이 교량은 인도(人道)로는 이용도가 낮아서 주행 중에는 이 사자상의 존재나 무가치성이 눈에 잘 띠지 않는다
이러함에 대한 관심이 식기도 전에 한술 더 떠서 이번에는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인도로 이용하는 서천교(西川橋)에도 나정교 것과 동형의 4구 석사자가 비 맞은 것 같은 초라한 모습으로 입이나 벌리고 앉아 있질 않는가.
물론 시(市)나 시민(市民)은 조형에 전문일 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시정은 안좌하고 시민은 나의 바쁜 생활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잣대로 하여금 함구,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느끼는 감(感)은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자조형물이 시민에게 등한시나 되고 전문가에게는 무시당하는 대상이라면 설치할 필요가 없고, 필요하다면 필요 충분조건의 조형물을 설치함이 타당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조형물은 시민의식을 반영하는 체(體)이기 때문이다 경주는 그러한 사자상과 같이 초라하고 위용도 없는 시정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다.
바람직한 교량조형물이 어찌 사자상 뿐이겠는가? 확장할 당시 필자는 사자상을 포함하여 구상한 4종류의 안을 제출했었다. 그러나 구태여 수호석사자로 한다면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순회한「한국미술 5000년 전」에 전시되었던 괘릉동 원성왕릉(元聖王陵)의 수호석사자가 버젓이 경주에 있다, 하필이면 기능석공들의 대량제품인 이 보잘 것 없는 사자상을 전남 황등에서 구입한 것은. 시정이 이 분야의 전문이 아니기에 경주의 석사자상을 몰랐을 것으로 이해한다.
통일신라의 문화전성 말기에 축조된 38대 원성왕릉에는 石사자를 포함하여 문무인(文武人)상들이 있다 그 조형수준은 가히 석굴암 불상조각들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맥이 이어졌다, 필자는 이론가가 아니고 제작하는 조각가의 입장에서 이를 고찰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