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다. 바람과 햇살까지도 봄의 기운에 맞장구 치듯이 풀잎과 꽃과 사람들을 그들 쪽으로 불러모은다. 자연의 법칙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시를 공부하기 위해 김천에서 대구까지 꼭 내려온다는 이근창 시인. 시를 향한 그분의 열정이 누구보다도 뜨겁다는 걸 몇 마디 대화 속에서도 감지할 수 있었다. 1961년 공직생활을 시작으로 2000년 정년퇴임을 하는 순간까지 한번도 뒤를 돌아보는 일없이 성실하게 자리를 지켰다는 주위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그 분의 활동을 보면 삶의 자세를 알 수가 있겠다. 경북 북부지역인 영주 예천 문경 상주 김천 지역의 우체국장을 역임하는 동안 그 열성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각 기관으로부터의 다양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녹조근정훈장`을 수여 받은 일은 주위 분들의 자랑이기도 했다. 이근창 시인은 1940년 경주시 건천읍 신평1리에서 출생하여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아련한 향수 속에 고향을 더듬는 시인의 얼굴에는 지나간 날에 대한 안타까움이 시처럼 묻어 나왔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으며 친구나 연인처럼 손잡고 여행길에 자주 오르는 부인 최수찬씨가 늘 함께 한다고 했다. 정년퇴임을 3년 앞두고 제 2의 인생설계에 들어갔는데 그 동안 미루어왔던 시를 쓰기로 결정했고 대구시인학교를 운영하는 서지월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 쓰기와 등단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이의 벽을 넘어 정신세계는 누구보다도 젊고 활기찬 것이 그 분의 장점인 듯 느껴졌으며 그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남겨진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유치원생의 마음으로 시를 대한다는 이 근창 시인 2001년 `대구문학` 신인상 시 당선에 이어 2002년 `불교문예` 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문인협회와 불교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며 시집으로는 `늘 가슴 빈자리에`가 있다. 새로운 시집이 나오면 구해서 읽는 치열한 정신의 60 소년. 나이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 세계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시인의 꿈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고싶다. 첫 인상 만큼이나 부드러운 그분의 등단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다시 한번 등단을 축하드린다. 冬至를 기다리며 20대부터 강바닥 돌멩이로 굴러다니던 나에게 동짓달은 기러기 떼 노을 속으로 쓰러지는 서녘하늘처럼 쓸쓸하다 세모의 달력에는 그래도 아픈 상처 달래주는 동지가 기다린다 구수한 팥죽이 끓는 유년의 동지, 외진 길섶에서 때때로 때묻은 옷자락 붙잡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소복으로 단장한 어머니 팥 삶고 떡가루 빻느라 분주하시고 낮부터 먼 산 뿌옇게 흔들던 눈발들 함박눈으로 몰려온다 창호지문 열면 눈은 끝도 없이 내리고 가마솥 팥죽이 내뿜는 더운 김 온 집안 가득 채우면 시름도 추위도 잊고 무언가 가슴 뿌듯한 겨울밤 밤눈 소리 없이 맞으며 나즈막하게 엎드린 초가집들 굴뚝마다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산동네 올 겨울에도 팥죽은 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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