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도시 慶州의 造形物을 보며, 이대로가 좋은가 -기존, 계획중인 조형물을 중심으로(2) - 向石 李 東 浩 (조각가) 조형물 조성목적은 그 지역과 시대체재 속의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등 사회생활 전반을 체험한 내용의식이 반영되는 구현일 뿐만 아니라, 환경공간의 일 정점을 인공으로 미화시켜서, 보다 질적 향상의 삶을 영위하려는 표상(表象)의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형물은 경제성과 기대치를 충분히 고려하여 장소를 선정하는 정책적 기획을 우선하며, 만인이 봐서도 그 타당성이 높고, 조성목적에 부합하는 내용과 형식 및 재료의 조형미가 연출되어야 한다. 미국의 자유 여신상,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프랑스의 에펠탑, 로마의 개선문, 캄보디아의 앙크로왓뜨, 인도의 아잔타, 중국의 자금성, 이집트의 피라밑, 이락의 지그랏트, 구 쏘련의 자유 여신상, 신라의 성덕대왕신종 등 그 예를 들 수도 없다, 이러한 광의의 조형물들은 그 규모나 장소 그리고 조성의 적절한 목적성과 효과적인 조형성 때문에 세계적인데 반하여, 소의의 조형물로서 그 규모를 제외하더라도 여러 가지 측면이 결여된 조형물들을 경주일원에서 찾게 된다. 그 첫 예로, 불필요한 조형물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경부고속도로상의 경주터널 왕복 출입구 앞 벽면에 Tile 재질로 평면 설치한 천마(天馬), 비천상(飛天像)의 조형감각은 일반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조형의 수준정도 이전에 이로 인한 시선의 분산은 심리적으로 교통 안전성과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고속으로 진행하는 차량의 전면에 위치하는 조형물이 설사 보인다 하더라도 어느 누가 유치한 조형성에 관심을 갖겠는가? 오히려 주행도중에 순간적으로 인상되는 조형물의 그 혐오스러움 때문에 곧바로 시각을 달리하게 될 국내외인의 비웃는 시선에 대한 당혹과 치졸하게 비쳐질 우리의 모습에 수치의 분노를 자아낼 뿐이다. 애당초 이들 조형물은 불필요한 것이다. 고속도로상의 공간 및 주행조건, 사후관리가 고려되지 않은 단순차원의 정책과 이 볼 것 없는 조형수준 조차도 감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야기된 결과이다. 더불어 경주 IC Gate에 설치되었던 석등(石燈)도 어찌 그리 치졸하던지 실소의 뒷맛이 아직 남아있다. 석등(石燈)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널리 비침을 상징하는 종교 조형물이다. 우리는 삼국(三國)시대부터 조성하였고, 고려 이후부터는 전체적인 조형성보다 가공기교의 모색으로 그 형태가 시대적으로 양식변화를 하여 왔고, 또한 가치를 지닌다. 그 중에서도 신라석등이 대표적이다. 그 부분의 비례와 양감의 균형, 전체의 조화가 완전성을 이뤘지만,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내부가 꽉 차있어서 장중 수려한 전형(全形)의 이상미(理想美)에 도달한 신라석등을 어찌 IC의 치졸한 석등과 비견할 수 있겠는가?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에 그러한 석등이 제작되었고, 설치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이지 공공의 선택이 될 수 없음은 상식이다. 부언하여 우리가 원석재 수출을 지양하고 가공석의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그 와중에 일본식석등을 우리의 석등인 양 국내에 판매한 석물업자들의 무지(無智)와 의도적인 상술, 그리고 국내의 미(未) 개안이 합쳐서 연출한 그나마 우리 것도 일본 것도 아닌, 치졸하게 조합된 석등을 TV연속극에 무비판적으로 방영할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나 개인정원에 설치하여 왔다. 다시 한번 외국인의 눈에 “역시 한반도(韓半島) 문화형성은 일본의 영향권에 속한 문화로 비쳐질 것이다” 라는 우려도 앞선다. 참고로 석재가공은 중국에서 삼국으로, 백제는 일본으로 전수되었으나 그 조형성이 다르며 지역조건에 의하여 일본은 목재가공이 발달했음을 봐왔다. 약력 제13회 신라문화상수상(예술부문). 경주 덕동땜 준공비 제작(78, 농업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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