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 산야초 등 유기물을 많이 넣어 과육이 단단하며 찰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안강 찰토마토`.
3월부터 5월까지 출하되는 안강 찰 토마토는 충분한 일조량과 깨끗한 수질, 재배에 알맞은 토양을 갖춘 자연적 요건에다 산풀 퇴비 시비라는 독특한 유기농법이 이루어낸 지역 대표 농산물 중의 하나로 소비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육질이 단단하고 저장성이 뛰어나 신선도가 오래가며 꽉 찬 속살에서 배어 나오는 단맛과 상큼한 향은 타지방의 토마토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안강 찰 토마토만의 특징이다.
생산된 토마토는 전량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 농협을 통한 계통 출하로 항상 신선하고 토마토 본연의 맛을 간직한 채 식탁에 배달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농가에서는 보다 좋은 품질의 토마토를 생산하기 위해 땀을 흘린 결과 농산물 수입에 대한 조건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시장에도 지난 99년과 2000년에 수출한 바 있다.
안강 찰 토마토가 이렇게 좋은 과실로 자리잡게된 배경에는 농가들의 남다른 진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완숙퇴비로 소똥, 톱밥을 1년 동안 숙성해 두었다가 사용하고 재식 거리는 이랑나비 90cm 포기사이 30cm로 정식을 하여 당도를 높이고 있으며 최상의 토마토를 생산하기 위해 자동온도 관리 시설로 보온에 힘쓰고 있다.
또 겨울철 재배라 연료비를 절감하기 위하여 비례제에 의한 지중 가온으로 기온을 유지하여 겨울철 연료비를 절감함과 동시에 병해충을 예방하고 관수는 점적관수를 사용하여 기온을 떨어뜨리지 않고 토마토가 땅에 닿지 않게 관리하여 상품성을 높이고 곁순제거를 철저히 하는 것이 재배의 특징이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선별은 공동선별을 하여 기형과나 공동과가 없도록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 수입 과일 오렌지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안강 찰 토마토의 맛과 품질은 전국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안강시설토마토작목회 홈페이지 www.angangtomato.co.kr/
이달의 인물 권오찬 선생
생에 삶을 산수(傘壽) 살며 살아온 이야기를 했을 때 과연 어떠한 말들을 하며 지난날들을 돌이켜 볼 것인가.
일제 해방 후 무지에 그늘 속에 많은 사람들의 한글 개몽을 위해 젊은 날을 보내고 인재 양성과 고향 후배이자 자신의 모교 제자들에게 참 교육 실현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전 경주문화원 권오찬 원장.
권 원장의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보면 경주를 위해 참으로 많은 일들을 묵묵히 일해온 지역의 대표 교육자이다.
그런 그의 삶 속에는 경주의 현대 역사와 같이 숨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보통학교(현 계림초등) 5학년까지 경주시내에서 홀로 하숙생활을 하며 공부 한 후 경주중학교 2회로 졸업, 사회 생활 첫 경험이 하와이독립연합회 경주 연락원.
이런 권 원장의 독립운동 활동에 못마땅하게 본 일본은 45년 8월 18일까지 종군에 입대해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명했지만 뜻하지도 않았던 8·15 해방, 이런 권 원장의 독립 운동은 일제 해방과 함께 경주 시민들을 위한 개몽 운동이었다.
당시 권 원장의 나이는 21살.
젊은 청년 권 원장은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구) 근화여고 자리에서 시민들을 모아 태극기를 보급, 애국가와 자주 독립 정신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고 일본 잔류 군인들과 맞서 일본 잔행에 대한 속죄와 재산환수를 외치며 항쟁했다.
일본군 철수 후 권 원장은 어떠한 목적 의식보다 우리 민족의 무지를 깨우쳐 주기 위해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여 계남사립보통학교를 인수했지만 실패하고 대구사범대학 예과에 편입, 졸업 후 대구 지역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 4·19혁명 시 교원노조 가입에 연류돼 경북여고에서 안강농고(현 안강전자고등학교)로 좌천됐다.
그 후 모교인 경주중학교 수봉 재단 이사진과 동기생들의 권유로 결국 1962년 경주중학교로 교편을 옮기고 1년 근무 후 교감에 취임, 지난 1995년까지 경주 중학교·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퇴직했다.
경주중·고등학교 재직 시에도 권 교장의 모교·고향 사랑은 남달랐다.
"시골의 보잘것없는 학교를 전국 일등으로 만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쏟았으며 `오후에 온 학생(낙오, 문제 학생)들도 학교에서 공부 시켜라`라는 수봉 선생의 유언을 받들어 직접 자신의 손으로 퇴학을 시킨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하는 권 원장.
퇴직 후에도 고향 경주 발전을 위해 경주문화원 원장을 역임했던 권 원장은 "이제 남은 생 동안 경주가 신라천년의 숨결을 머금고 다시 한번 힘찬 도약을 했으면 하는 바램과 우리 학생들이 올바른 참 교육으로 공부해 경주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지막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