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석제 뚜껑 파편에 명문 결정적 자료 위덕대 박물관 확인, 학계 큰 관심 모아 통일신라 때 8개 성전사원(成典寺院)중 위치가 확인되지 않았던 봉성사의 위치가 처음으로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위덕대학교 박물관(관장 김무생)은 지난 25일 지금까지 그 터를 알 수 없었던 봉성사지가 경주시 인왕동 구 경주교육청 일대라고 밝혔다. 봉정사지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된 것은 `영태이년(永泰二年) 봉성사(奉聖寺)명(銘)이 기록된 납석제 뚜껑 파편이 박정호 신라문화진흥원 전문위원이 지난해 구 교육청 앞의 가로수를 뽑아 낸 자리에서 발견했으며 박 위원이 명문에 대한 판독 및 연구를 위덕대 박물관에 의뢰해 밝혀지게 됐다. 박물관측은 이 명문 납석제 뚜껑 파편은 복원 지름이 7.9㎝, 두께 2.1㎝, 높이 4.1㎝로 절반 정도가 깨어져 나간 상태며 탑이나 불당에 봉안됐던 사리호의 뚜껑이라고 했다. 판독된 명문은 고졸(古拙)한 해서체로 `永泰, 二年. 七月, 一(?)△, ……北方, 奉聖, 寺也(?)` 등 13글자이나 원래는 26~28글자가 새겨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물관측은 영태이년은 신라 혜공왕 2년으로 서기 766년에 해당되며 봉성사는 신라 신문왕 5년(서기 685년)에 창건된 성전(成典)사찰로 통일신라시대의 중요한 사원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또 조선왕조시대 중종 25년(서기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봉성사는 부(府)의 동쪽 4리(在府東四里)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이번에 납석제 명문 뚜껑과 절터를 조사한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 유물은 8세기대의 금석문 그 자체로서도 매우 중요할 뿐만아니라 사지(寺址)가 실전(失傳)된 성전사원의 위치를 찾아주어 불교사 및 신라 왕경과 관련한 역사지리연구에 결정적인 자료된다"고 말했다. ■통일신라시대 8개 성전사원(成典寺院)■ 통일신라시대 성전사원은 왕실의 조상숭배를 위한 원당(願堂)이자 국가가 불교계를 통제하던 관사로 알려져 있으며 문무왕이 창건한 사천왕사(위치: 배반동)와 봉성사(신문왕 창건/인왕동), 감은사(문무·신문왕 창건/양북면), 봉덕사(성덕·효성왕 창건/위치 미확인), 봉은사(혜공·선덕·원성왕 창건/위치 미확인), 영묘사(선덕여왕 창건/사정동 전(傳) 흥륜사지), 영흥사(법흥왕비 창건/ 위치 미확인), 황룡사(진흥왕 창건/위치 미확인) 등을 8개 성전사원이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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