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거리의 바람은 여전히 쌀쌀하지만 가로수 지나쳐 걷다보면 갈라진 껍질 사이로 파르란 싹들의 수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단단하게 무장하고 속을 내보이지 않는 껍질 속에 얼마나 무성한 이파리와 꽃잎의 노래가 숨어있는지 경험 많은 우리는 예감할 수 있다.
어스럼 내리는 동안로를 지나 최근배씨를 만나기 위해 종합유통단지에서 동변동으로 강을 가로질러 걸쳐있는 다리를 건넜다. 일 때문에 며칠 밤을 꼬박 세웠다는데도 젊은 패기로 인한 야무진 모습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최 근배씨는 1971년 생이다. 우리 나이로 33세가 되는 셈이다. 출생지인 경주시 동방동 607-2 번지에는 현재 부모님이 계시고 위로 한 분 있는 형님은 울산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경주 고등학교에서 꿈을 키웠고 좋아하던 전자제품들을 만나기 위해 영남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LG전자에서 5년 간 실무를 익혔으며 지금은 프리랜서로 모든 전자제품 모니터의 외형 디자인을 설계하고 있다. 이미 업계에서 그 실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서 밀려드는 주문에 며칠 밤 지세는 일은 예사라고 한다.
컴퓨터의 모니터는 물론이고 텔레비젼, 휴대폰, 전자레인지 등 전자제품의 외형이 그의 정밀한 손끝에서 탄생된다.
어릴 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형님과 둘이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뜯어보고 다시 만드는 일을 수도 없이 했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최 근배씨를 만난 곳은 저녁이면 출근한다는 `제주방목생오겹살식당’이었다.
정갈하게 꾸며진 50여 평이 넘는 식당을 놀랍게도 그가 운영하고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의아해 한다며, 너무 상반된 두 가지 일을 하게 된 본인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즉, 이미 한 가지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시대는 지났다는 이야기였다. 무엇이든 내 것 아니라도 받아들여 자기화 시키려 애쓰는 삶의 자세에서 창의력 또한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 한다. 열린 사고로 나아가는 최 사장의 앞길에는 더욱 좋은 일들이 기다릴 것이다. 낮에는 디자인과 설계에 몰입하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식당을 지키는 최사장에게 잠은 언제 자느냐고 물으니, 잠이 많이 모자라지만 너무 즐겁고 보람된 생활이라고 말했다.
봄을 기다리는 껍질 속 새싹처럼 그의 가슴에서 웅성거리는 계획들이 현재보다 더 크게 우리를 놀라게 할 날을 기대하며, 자랑스런 경주인으로써 힘찬 걸음 나아가 주길 당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