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미온적· 의회는 어물쩍 ·업계는 적극적 경주시의회 이모의원이 관급공사를 불법 계약한 사실과 관련해 담당 공무원들과 해당 의원이 각각 징계 처분을 받았고 해당 의원은 시의회 본회의에서 공개사과의 징계조치를 내렸다. 담당 공무원들과 시의원 개인의 자질 문제로 일단락 되는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지역 건설업계는 경주시와 시의회의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미봉책에 불과한 조치일 뿐 향후 유사한 비리를 근절할만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크게 아쉬워 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읍면동 사무소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의 입찰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주시는 읍면동 발주공사에 대한것은 조례나 규칙이 아닌 행정 내부 지침또는 기준에 불과하고, 읍면동에서 지역실정에 맞게 시행하면 되는 만큼 내부지침의 변경과 같은 가시적 조치는 불필요한 것이라며 현행 방침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경주시등의 징계와 경찰 수사 경주시는 이모 의원이 대표로 있는 건설회사와 수해복구 등 관급공사를 수의계약한 안강과 외동, 천북 등 3개 읍면장에 대해서 경고 처분하고 관련 공무원 9명을 훈계조치 했으며, 경주시의회는 이 의원에 대해 본회의장에서 공개 사과토록 징계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경찰은 관련 공무원들을 소환해 공사계약과 관련해 외압이 있었는지 또는 뇌물이 오고갔는지를 집중 수사했다. 경찰은 그러나 별다른 위법 사항은 적발해 내지 못했다. 이와관련 경주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조사해본 결과 시의원에 당선되기 이전에 이미 계약한 것도 있고, 시의원의 신분으로 계약한 것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이 과정에서 법을 위반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법처리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행 입찰방식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는 일반공사의 경우 1억원 미만, 전문공사의 경우 7000만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공사의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5000만원을 초과하는 공사는 시본청에서 발주하고 5000만원 미만의 공사는 읍면동에서 발주하고 있다. 이 기준은 읍면동 재배정 사업이나 읍면동간 경계가 불분명한 사업 등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내부 기준 또는 지침일 뿐 규칙이나 조례로 제정된 것은 물론 아니다.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1억원 미만의 공사를 시행하면서 시본청에서는 공사금액 2000만원 이상일 경우 거의 대부부분 다수견적을 받는 경쟁입찰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반면 읍면동에서는 이와는 판이하다. 읍면동에서는 공사대금 3000만원을 기준으로 수의계약과 경쟁입찰을 구분해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본청보다 수의계약을 하는 공사금액의 단위가 1000만원 이상 높은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읍면동에서 발주하는 소규모 주민숙원사업이나 현안사업, 시본청 재배정사업의 건수는 읍면지역이 동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수나 금액 모두 월등히 많다. 그러나 연간 사업건수와 사업액수는 크게 차이가 난다. 2002년 행정 사무감사 자료를 통해 거칠게 나마 추정해 보면 연간 읍면사무소 마다 20여건 안팎에 10억원내외의 소규모 사업을 발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관행은 시의원과 읍면동 사무소, 시의원과 읍면동 소재 업체간의 유착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원인이 된지 오래다. 이와관련 경주시의 한 공무원은 “지방자치 초기에는 읍면동 마다 해야 할 사업도 많았고, 또 의원들을 챙겨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상당수 읍면동에서 재량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지역의원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업자에게 많은 공사를 발주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이 공무원은 그러나 “지금은 그런 단계는 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공무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건설업자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여전히 그런 관행은 온존하고 있으며 문제가 된 이 의원의 경우 지극히 운이 나쁜 경우일 뿐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주지역의 한 건설업체 대표는 “개별 사업으로는 그다지 큰 금액이라고 볼수는 없지만 여기 저기서 사업을 합쳐놓으면 금액은 금새 눈덩이처럼 불어 난다”며 “눈앞에 있는 이득을 못본채 할 성인군자 같은 시의원이 과연 몇 명이나 있으며, 또 시의원의 유무형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읍면동장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현재와 같은 관행은 읍면에 연고를 둔 소규모 영세업자를 양산하면서 갈라먹기식 공사관행을 유지시키고, 업자의 양산은 곧 공사질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시 및 의회 대책 경주시는 현행방식의 고수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행은 내부 기준일 뿐이며 읍면동장에 위임된 권한이므로 해당 읍면동에서 자체적으로 실정에 맞게 적법하게 시행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입찰에 따른 행정력의 낭비 요인을 최소화하면서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현행 방안을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경주시 회계과의 한 담당은 “정부방침은 수의계약이 가능한 기준금액을 상향 조정하고 있는 추세”라면서 “업무단순화, 행정효율을 위해 현행 방식을 고수하되 읍면동에서 최대한 실정에 맞게 위법하지 않게 업무를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시의회의 입장은 이보다 더욱 어정쩡하다. 시의회는 이의원 문제가 불거진 뒤 가진 간담회에서 수의공사에 대한 절대 불개입 방침을 천명했을 뿐 의원들간에도 여러 이견이 존재해 단일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어물쩍 넘긴 상태다. 시의회는 건설협회가 지난해 수의계약 기준 금액을 하향조정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도 결론을 도출하는 대신 시본청이 지침을 마련하라며 책임을 떠넘긴 상태다. ▲업계의 대안 지역 건설업계는 경주시의 이같은 방안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건설업체 대표자들의 모임인 경주전문건설협회는 이미 지난해 7월 경주시와 시의회에 현행 읍면동 공사발주 관행의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시본청처럼 2000만원 이상의 공사는 다수견적을 받는 경쟁입찰 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건설업체 관계자는 읍면동 발주공사의 수의계약 기준 금액을 이 보다 더욱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500만원 안팎의 소액 공사를 제외하고는 차제에 전면적으로 공개입찰을 실시해야 갖가지 의혹과 비리의 연결고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갈라먹기식 업자 선정의 폐단이 부실공사와 함량미달 사업체를 양산함으로써 결국 시전체의 예산낭비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미 시 본청에서는 전자입찰을 실시하고 있는 만큼 읍면동에서도 전자입찰을 도입할 경우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는 충분히 방지 할 수 있고, 공사업체 입장에서도 원거리 읍면동사무소를 수차례 오가며 발생하는 각종 부정과 낭비요인을 일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의계약 금액을 대폭 하향조정 하는 대신 준공과 공사감독의 권한만 읍면동에 존속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단일 사건으로 유례없이 많은 공무원이 징계를 당한 이번사건을 겪으면서도 경주시는 현행 공사발주제도를 유지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주시공무원직장협의회는 잘못된 관행의 타파를 뼈대로 하는 자정결의문을 채택하기로 하고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사회의 공론화를 통해 합당한 결론의 도출을 바라는 업계와 시민들의 요구를 경주시가 어떻게 담아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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