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사회에는 오손도손 의좋게 살아가는 이웃의 정이 넘쳐나는 다정한 사회, 따뜻한 이웃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현대사회는 오직 고도성장을 유일한 목표로 물질적 풍요만을 지향하는 현실주의시대가 도래하고 있다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진정한 이웃을 잃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송나라때의 이야기로 여승진이란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새집을 한채 장만했는데 집값을 생각보다 큰 금액을 주고 샀다는 주의의 소문을 들은 이웃의 한 주민이 왜 그렇게 거액인 1천만금까지 주고 샀느냐고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집값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너무 좋은 이웃을 사기위해 웃돈을 얹어준 것뿐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그뿐인가. 조선 중종때 김정국이란 선비가 읊은 시에서도 천금으로 집을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아름다운 싯귀를 찾아볼 수 있어 오래 새겨둘 말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이웃사촌이라고 하지만 이웃은 사촌이 아니라 삼촌반이란 말도 회자되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 잘 지내는 이웃은 실로 가까운 친척보다 나은 것이 우리네 오랜 미덕이며 생활 습관이었다. 이웃이 높은 벽을 쌓고 서로 냉대하고 이웃끼리 등을 돌린다면 개인과 가정은 물론 지역사회도 나라도 바로 서지 못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특히 21세기에는 소외·고독·삶의 무의미 등 인간관계의 교란과 관련된 많은 난제들이 주된 주요사회문제로 점차 확대되고 있을뿐 아니라, 사회복지정책이 국가의 최고 목표로 사회문제 대책의 최선책이란 데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이웃을 위해 헌신적인 봉사를 요구하고 시민단체들이 앞 다투어 기부분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일련의 과정도 따지고 보면 사회 공동체의 해체 위기에 맞서기 위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로 부각되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빈부격차와 계층간의 갈등이 깊게 패인 우리사회에서 언젠가 30대 초반의 회사원이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거금 5억원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 놓은 아름다운 선행이나 일생을 외롭게 검소하게 살면서 폐품을 주워 모은 자신의 전 재산 1억원을 불우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금으로 쾌척한 어느 노 할머니의 따뜻한 온정의 손길은 정말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또한 남들이 모르게 음지에서 드러내지 않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외계층을 위해 내몸을 아끼지 않고 소리없이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사회사업가와 자원봉사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일상생활의 텃밭에서 정말 살맛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삭막하고 각박한 쪼들림에 힘겨워하며 외로움과 소외감에 이웃의 도움을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사회지도층과 여유있는 계층에서 자연스럽게 선진 기부문화가 연말 연시의 일시적인 행사가 아닌 연중행사로 자리잡도록 사회분위기를 변화시켜 나가는데 앞장 서 보자. 이기락(李起樂) 전 국제신문, 한림야간중고등학교장, 서라벌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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