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야산어귀를 조금 올라가니 길 옆에 `백련요`라고 쓰인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조금더 걸어서 오른편 언덕 평평한 곳에 무명 도요인 위령탑 앞에 서게 됐다. 조금스럽게 미리 가져온 음료수 한잔을 앞에 놓고 묵념.... 백년요 사장님으로부터 위령탑 구조와 이를 세우게 된 연유를 설명들었다. 탑의 구조는 지구의 둥근 다반위에 우물 정자를 그려넣고 그 위 다잔 두개를 놓고 다시 지붕과 바위를 얹은 후 여기다 글을 새겼다는 설명이다. 이곳이 가야문화 전성시 토기의 발상지로써 조상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아 이들 무명 도요인들의 위령탑을 정부와 의논해 세웠다고 한다. 그 옛날 우리의 도자기가 15~16세기경 일본에 건너가 사무라이 정신을 꺾고 우리네 정서가 듬뿍 담긴 다도문화를 전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득 우리 조상님들의 우월성을 다시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 순간0 백련요를 세운 이분들의 마음씨에 짙은 감동이 느껴졌다. 집앞에 이르니 태산목 잎위에 탐스럽게 얹혀있는 하이얀 꽃들이 마치 백련요에서 구워낸 도자기를 연상시켜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도요지내에 들어가니 연시빛이 나는 함지가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두드려 보니 목탁소리가 났고 다시 흔들어 보니 가볍게 움직여 나무함지인줄로만 알았다. 동그란 항아리를 두드려보고 흔들어 보아도 마치 나무 같았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흙으로 만든 것이어서 또다시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요지 뒤켠은 전시실로 선반에 놓인 도자기가 잿빛이었다. 그러나 이런 잿황빛은 다른 공장에서도 보았는데 이곳의 흰 찻잔은 유난히도 빛이 났고 달라 보였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간 회원들이 번갈아 사랑방에 안내돼 다(茶)를 나누었다. 방안 가득한 책장을 보면서 이 집 주인의 끈질긴 연구와 집념이 상상됐다. 벽에는 백색 바지 저고리를 입은 소박한 모습의 최씨 선조님상이 있었고 마치 우리의 조상님을 만난 듯 친밀감을 느꼈다. 회장님이 동근 다반을 안고 놓지 않으시기에 가만히 들여다 보니 다반위에 감은사의 동.서탑과 의견대, 대왕암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 회장님께서는 이에 매혹돼 그 다반을 놓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백련요의 본향이 어디인지 다반의 그림만 보고도 짐작이 됐다. 백련 같은 흰 다반에 한잔 다를 마시면서 쇠벌뜰의 꽃 포자가 경남 하동까지 날아와 굳건히 뿌리내려 한포기 백련으로 자라고 있음에 마음이 뿌듯했다. 점심은 끊임없이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어느 바닷가 횟집 윗층으로 사방이 탁 틔어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이곳에서 바다 내음을 맡으면서 바다 뱀장어 구이를 난생 처음 먹어보곤...아, 그 맛을 무엇에다 비하리오! 이런 마음들을 아름드리 한데묶어 고요히 백련요에 맡기곤 일어나 보리암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그러다 뒤돌아 보곤 백련요를 이토록 훌륭히 키워낸 그의 손을 잡았다....."쇠벌의 후손이여 영원히 빛나라" 경주에 다달을 무렵 백련요 주인의 형님되시는 선덕여고 최 선생님이 회원 모두에게 그곳에서 만든 도자기를 선물로 받았다. 우주속 지구가 돌아가고 이 지구속에 우리의 인간 관계가 맺어져 돌아가듯 백련요의 형제분들은 우리의 제자요 우리딸은 다시 그들의 제자로 서로 얽혀 돌아가고 있다. 이런 인연속 백련요의 부친은 옛 신라문화동인회 회원이셨다. 그래서 우리 동인회 관계는 서로들 형과 아우로 맺어져 있고 언제 보아도 구수한 토속적인 인간미로 서로 얽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앞으로 신라문화동인회 후손들 역시 올곧게 내 향토를 사랑하며 내 이웃을 위한 마음이 비길데 없이 뛰어날 것이라 여겨진다. 오랜만의 나들이로 내 생애 잊혀지지 않을 즐거운 하루를 백련색 다잔에다 보듬고 맑디 맑은 다솔찻물 위에 태산목 흰 꽃잎 띄워 마셨던 그 다맛.... 이제 내 일기장속에 아무도 몰래 잠재우고 싶다. 경주시 노서동 문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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