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향이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다. 어릴때부터 부산성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고 자랐다. 그 옛날 어릴때 산성 시냇가에는 증조부님과 조부님께서 심어놓은 밤나무가 무척 많았다. 먹을 것이 별로 없던 일제시대여서 틈날때마다 산성 시냇가에서 집안 형제들과 밤도 따먹고 여름에는 멱도 감으며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 재피(산초)껍질을 말려 볶아서 가루를 만들어 산성 거랑(시냇가)에 풀면 뱀장어가 바위밑에서 머리를 쑤욱 내민다. 나의 삼촌께서 얼른 이 뱀장어를 잡아 쥐고는 땅바닥으로 던지면 우리들은 어렵게 잡아 그릇에 담곤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산성거랑에 왠 뱀장어가 있었는지 궁금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다. 지금부터 약 70년전 날이 하도 가물어 조부님께서 산성 거랑을 막아 선동(송선리)앞 들판에 물을 대곤 했다. 이때 조부님께서 뱀장어를 그 연못에 넣으셨던 모양이다. 달래창 큰 못은 해방직전 만들어져서 나도 알지만 산성못은 그러나 나도 본 적이 없다. 돌아가신 아버님 말씀에 따르면 산성못에 물이 찰 경우 물이 너무 맑아 밑바닥 돌이 훤히 보이곤 했다고 들었다. 물을 뺄 때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헤엄을 잘치는 어른이 들어가 물을 빼곤 했다. 그 물로 2년여 농사를 짓곤 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그러나 이후 큰 비가 오면서 그만 그 못이 터져 지금은 그때 쌓았던 흙만 일부 남아 있다. 얼마전까지 우리는 유래없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문득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 옛날 곡괭이와 삽 밖에 없었던 시절에도 많은 사람을 동원해 못을 막는 등 그런 큰 일을 하셨다니 조부님의 그 뜻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요즈음 같으면 중장비를 동원해 힘들지 않고 더욱 튼튼한 못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선동 어귀에 들어서면서 할아버지 효자비를 볼때면 이 때문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할아버지 옛날같이 앞으로도 가뭄이 들면 물을 주소서! 서울시 성북구 종암 2동 정주원(67세.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