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른 농업으로 단감 명문 자리잡는다` 단감 제일주의 안강참단감 작목회 우리 농촌에서 가장 쉽사리 볼 수 있는 감. 하나의 농산품으로 자리잡기 이전부터 감은 우리 농민의 마음으로 가을 고향의 상징 이였다. 1989년 전국의 단감재배면적이 8천938ha에 불과 했으나 10년이 지난 1999년 통계에는 2만4천ha로 약 300%가 증가해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이 농민들의 이슈였다. 이러한 현실에 우리 농민들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책은 획기적인 생산성 증진, 즉 철저한 프로정신 경영으로 소비자가 선호하고 수출품으로 손색없는 고품질의 과실을 다수확 한다는 목표가 설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가 새롭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 농민들은 현실을 인지하면서도 체질 개선에는 쉽지 않는 과제였다. 결국 학계와 연구·지도계, 행정관서, 전문조합 및 농업인 조직이 함께 참여하고 선진 농법을 벤치마킹하는 조직적인 작목회가 운영돼 생산, 재배, 판매에 이르는 체계적인 운영과 소비자들이 표현하는 피드백을 수렴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 차별전략 안강 참 단감 안강 참 단감은 타 단감재배에 비해 우선 재배조건에서 돋보인다. 농작물과 과수 재배지로서는 최적 평야지대인 안강을 터전으로 하며, 지리적으로도 동해안 해풍의 영향으로 육질이 단단하다. 일교차가 심한 일기는 당도를 더욱 높여주어 바로 참 단감만의 독특하고 아삭아삭한 과육의 근원이 된다. 현재 4백여명 농가로 이루어진 단감작목회(1979년 결성)는 우수한 품질에 승부를 걸고,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제고시키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펴고 있다. 첫째, 전국 최초로 기존의 20kg, 15kg 포장박스를 10kg(5kg 혼용실시) 소포장 칼라박스로 대체하여 소비자의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 구매력을 향상시켰다. 둘째, 농산물에는 이례적으로 소비자 보호장치인 `re-call`제를 접목 상용화하여 소비자가 불만족스러운 상품에 대해서는 100% 보상조치를 함으로써 소비자에게는 상품에 대한 신뢰성을, 생산자에게는 책임감을 가지게 하는 기대효과를 가져옴은 물론,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보다 직접적이고, 근거리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또한 2000년에는 80톤이라는 동남아시아 수출기록 달성은 지역특산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했다. 안강 참단감은 과감한 포장재 개선을 필두로 얼굴 있는 농산물 참 단감의 브랜드 네임을 걸고 21세기 환경정책에 발맞추어 무농약재배를 지향한 자연농법에 의한 고품질의 단감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안강 참단감은 전국 공영도매시장 어디에서나 소비자들과 만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다. 이와 함께 품질면에서도 안강 단감은 특산물 품질 인증서, 환경 농산물 인증서를 받고, 전국 농산물 품평회에서 금상을 획득, 최우수 단감 생산 단체로 선정되었으며, 제4회 세계농업기술상 대상, 지난 2001년에는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안강 참 단감의 과제 많은 품평회와 함께 환경 인증서를 받았지만 안강 참 단감도 더 나은 브랜드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았다. 먼저 생산 농가간에 과실당도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당도가 높을수록 고품질 과실에 해당되고 대과라 해도 당도가 낮으면 품질 평가가 덜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 과실이 크고 품질이 균일해야 하며 전 농가를 대상으로 철전한 선과 과정을 거쳐 품질관리 기술이 전파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무종자 과실과 기형과를 줄여야 하며,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과육을 더욱 아삭아삭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며 생리장애와 과육 연화현상을 방지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안강 단감 작목회 안강단감작목회는 1979년 3월, 13명의 회원으로 설립되었으며, 초대회장 조중형, 차기 최해영, 박두열 회장에 이어 1992년에 현 최상기 회장(사진)이 취임, 1996년에 영농조합법인으로 등록했다. 2002년 현재 회원 383농가, 비회원수 134농가, 식재면적 172㏊, 부유 53,548주, 서촌조생 43,374주, 기타품종 7,420주로 모두 104,342주의 단감을 재배하고 있으며 2001년에는 489톤의 단감을 출하하여 66억5천만원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이는 창설 초기인 1980년의 15톤 출하로 4,500,000원의 판매량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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