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뒹굴며 장난치고,그러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수업시간 몽당연필에 침 묻혀가며 글쓰기 하던 교실은 유리창이 깨졌고, 천정에선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가득했던 운동장엔 바람만이 스산했고 잡풀이 무성했다.
손주들을 보내놓고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봤던 노인들에게 학교는 어느새 기억저편의 잊혀진 공간으로 변해갔다.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경주의 서쪽 끝자락 오봉산 아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개교한 뒤 43년동안 마을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이 유일한 놀이터였던 아화초등학교 천촌분교는 1995년 폐교되면서 그렇게 주민들에게서 멀어져갔다.
7년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폐교 천촌분교가 지역의 한 예술가에 의해 전통놀이와 문화를 체험할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기획처장이자 조소전공 이점원 교수(조각가)가 19일 교육청 관계자와 지인들을 초청하여 조촐한 기념식을 갖고 문을 연 경주전통문화체험학교.
요즘 아이들이 잊고 지내는 우리 옛 놀이들을 체험하고, 솟대, 장승, 연, 제기, 팽이등을 직접 만들고 또 접할수 있는 기회를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전통문화, 놀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취지다.
폐교를 임대하고 새롭게 단장하는데 들어간 돈은 이교수의 개인돈 1천4백만원.
그러나 이곳을 체험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에겐 전액 무료로 시설물과 재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정문엔 솟대가 세워졌고, 잡풀 무성했던 아담한 운동장은 몇차례 굴삭기 공사를 거친다음 마사토를 깔아 깨끗하게 단장했다.
운동장 주위는 마치 조각공원처럼 이 교수의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잡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20평짜리 교실 3개는 전통놀이 기구 제작실과 강의실, 그리고 잠자는 방으로 꾸며졌다.
제작실에는 전통놀이기구 제작에 필요한 도구가 있고, 교실뒷쪽에는 제작 방법을 붙여 놓았다.
전통놀이와 문화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할 두 번째 교실에는 책상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잠을 잘 곳은 마치 군대 내부반처럼 교실 양쪽에 침상을 만들었다.
제작교실에서는 솟대, 장승, 토우등 전통적인 민예품이나 예술품과 연, 썰매,제기등 전통놀이기구들을 직접 제작해 볼수 있다.
강의실에서는 민예품이나 연등의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물을 직접 보여주고 토론과 강의를 병행할예정이다.
숙박시설을 동시에 갖춤으로서 주말 부모를 동반한 유,청소년들이 부모들과 함께 소중한 경험을 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교정곳곳엔 아이들이 잊고 지내온 옛 놀이들을 부모들과 함께 체험하고, 솟대, 장승, 제기, 팽이를 직접 만들고 또 놀아보게 하겠다는 구상을 실천하려는 흔적이 곳곳에 역력했다.
몇몇 아쉬운점도 눈에 띄었다.
가장 시급한 것이 식수문제.
폐교전까지 사용했던 우물을 새로 단장 했지만 수질은 세면용으로만 가능할뿐 마실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다고 당장 해결할수 있는 일도 아닌 듯 해보였다.
지하수를 깊이 파는데 소요될 예산은 어림잡아 3천만원선.
이 때문에 이교수는 식수는 방문객들이 직접 가져오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곳엔 아직 상근하는 직원이 없고 전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약과 같은 것은 있을리 만무하다.
시설또한 상업적인 숙박시설이나 체험시설에 비해 열악하다.
이 교수는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저 있는대로 와서 만들고, 놀고,그러면서 우리것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이 학교를 설립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는 것.
비록 여러 가지부족한 가운데 출발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시간을 두고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몸담고 있는 대학교에서 기획처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어 짬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개교후 여름방학동안은 우선 토·일요일 이곳을 찾는 부모를 동반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만 진행할 계획.
그런다음 2학기가 시작되면 이웃한 아화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주말에는 외부 방문객을 맞이한다는게 이교수의 구상이다.
전국의 폐교가운데 상당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경주또한 마찬가지다.
연극체험학교,도자기체험학교,집단 예술인촌등등.
그러나 이처럼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시설을 개방하는 곳은 흔치 않는 일이며, 우리 경주지역에서도 민간에서 폐교를 활용해 일반 시민들과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것은 최초다.
때문에 이 교수의 시도는 더욱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통문화체험학교는 경주에서 영천방면으로 가다가 아화농협에서 좌회전하여 시골길을 가다보면 생식마을 바로 못미쳐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