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협 / 시인, 신라사람들
천년의 역사를 지켜 가는 것은 비단 유물뿐만이 아니라 사람살이도 그렇다. 제아무리 거창한 유물이 있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깃든 땀과 이야기와 향기를 사람이 전해주지 못한다면 껍데기뿐인 것이다. 서
울의 도심에서 문화의 향기가 발목까지 잠기는 인사동 거리가 그런데, 이 곳 서안에도 우리의 인사동거리랄 수 있는 고문화거리가 있었다.
10m남짓한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들과 반평의 땅을 차지한 채 올목졸목 고티나는 물건을 펼쳐 둔 노점상들이 거의 1km나 뻗어 서너시간을 보내기에는 넉넉한 볼거리다. 무엇보다 거리 처음부터 끝까지 상점들은 한결같이 큼지막한 나무 현판들로 상호를 장식한 것이 우리의 네온사인 간판과는 사뭇 다
르다. 1천 수백 개의 비석이 있는 비림(碑林)박물관과 1천년은 충분히 됨직한 회화나무와 함께 판각되어 늘어선 현판이 멋지다.
또 이 곳은 어느 가게에서든 같은 물건을 파는 우리와는 다르게, 가게마다 한가지 주제의 물건만 판다. 서예작품, 붓과 벼루, 피리, 토용, 차도구….
인주(印朱) 한 개를 구입하는데 여느 곳처럼 할인이 되질 않는다. 먼지나는 길가에 두부튀김이 맛있어 보여 현지인 사이를 비집고 우리 돈 1백 50원을 내고 한 접시 샀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절반도 못먹고 말았다.
처음 느낌에서부터 그래서인지 이 곳 사람들의 얼굴에 거짓은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들을 상대한 터라 제법 영어로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고, 간간이 우리말 몇 마디 하는 점원들도 있어 반갑다.
이미 나도 알고 있는 서안에 대한 대략의 이야기와 인기 있는 유적지도 짤막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해가 저물고 예의 탁한 공기 속으로 스물거리며 해가 사라지고 곧 어둠이 내린다. 하지만 물건을 정리하는데 허둥이는 사람은 없다.
천 수백년을, 물처럼 흘러오는 길에 강 같은 이 거리를 탄생시킨 역사와 그 주인공인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