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비석이야기
3.효자 손시양 정려비(보물 제 68호.경주시 황남동 305)
경주시 노동동청사 바로 아래 속칭 내남사거리에서 황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차로를 따라가다 황남시장부근에 다 왔다 싶으면 과 같은 독특한 이름의 이정표가 나온다.
황남시장 뒤편으로 남부새마을 금고 가는길을 따라 대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높이 2미터의 비석과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정려비로서는 드물게 보물 제68호로 지정된 황남리 효자 손시양의 정려비다.
정려비란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를 말한다.
이 비는 고려시대 사람인 손시양의 효행을 표창하는 정문(旌門)을 설치하게 된 내력을 적고 있다.
손시양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각각 3년간 묘소 옆에 움막을 지어놓고 곁을 지켰다 한다.
당시 동경유수(東京留守) 채정이 왕에게 그의 효행을 글로 적어 올려 마을에 정문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정려비다.
비는 비몸만 있을 뿐 아래의 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없다.
고려시대 명종 12년(1182)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채정이 지었다.
비의 전면에는 `효자리` 3글자를 새겼으며, 후면에는 5행 130자의 효행내용과 비가 세워진 경위가 새겨진 명문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진 비바람, 흐르는 세월에 닳고 깍여 전면의 글씨는 아주 희미하게, 뒷면 글씨는 제대로 읽기조차 쉽지 않을 만큼 잘 보이지 않게 돼 버렸다.
이 정려비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반적인 비의 형식과 달리 사각기둥 모양으로, 고려시대에 불교와 관련되지 않은 비문으로서 희귀한 자료다.
정부는 1963년 12월 보물로 지정했으며, 길가 노천에 서있던 것을 1977년 받침을 설치하고 보호각을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길옆에 위치한 탓에, 또한 행정기관의 무관심 탓에 비와 비각은 보물로 지정됐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초라한 행색이었다.
안내 표지판은 골목 장난꾸러기 어린이들이 붙여놓은듯한 각종 스티커가 덕지 덕지 붙어 있었고, 주차한 고급 승용차는 정려비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 조차 가로막고 있었다.비석앞 짜투리 공간은 인근 주택에서 내놓은 듯한 쓰레기 봉투의 불법 집결지였다.
쓰레기봉투들이 비교적 깔끔하게 정돈된채 놓여있었다는 사실만이 이 비가 그래도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임을 애써 웅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가로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