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해직교사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고 하자 일부에서는 실정법위반행위를 문제삼고, 또 일부에서는 교사들의 노동3권 주장 차원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실정법을 어겼다고 비판한다면 일제하의 3.1운동이나 4.19의거, 6.10항쟁등도 실정법을 어긴 잘못된 행위라고 규정하는것과 다름없는 반역사적인 행위다. 모순된 법이 지배하는 불합리한 시대에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어떻게 잘못된 법과 불합리한 사회를 바꿀수 있겠는가?” 89년 전교조 경주지회 창립을 주도하여 그해 7월14일 경주지역에서 가장 먼저 해직되었고 수배와 연행, 4년7개월여동안의 해직생활 끝에 94년 복직한 김윤근 교사(경주공고)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해직당시 40대 후반이던 그는 이제 50대 후반, 정년을 앞에 둔 초로의 교사가 되었다.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는 정부발표후 또다른 교사단체인 한국 교은 `정치적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있고,일부에서는 전교조를 이익집단으로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경주지역 최초의 해직, 전교조 경주지회장과 경북도지부장을 거쳐 전교조 중앙위원을 역임한 그를 만나 전교조 설립의 참뜻은 무엇이며, 이익집단화 하고 있다는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정부발표를 보면서 89년 창립당시 경주지회장으로서, 또한 지역최초의 해직교사로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한사회의 발전은 수많은 개인들의 희생과 문제제기, 도전에 의해 이루어 진다. 그런 희생과 노력에 대해 뒤늦게 나마 정당한 평가와 가치 부여를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실정법을 어긴행위라고 비판하지만 모순된 법과 불합리한 상황을 고치기 위해 실정법을 어기는 것은 불가피했다. 돈봉투 거부, 교육비리 추방, 학교민주화 운동등 전교조가 주창했던 내용들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당부분 현재 학교에서 반영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창립당시 연행과 구속, 그리고 해직이라는 쉽지않은 길을 걸었다. 민주화 운동 인정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인가? =당시 사회분위기는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도 못할만큼 권위주의적이었고 살벌했다. 전교조에 대해서도 대다수 언론과 정부가 좌경세력으로 몰아세우는 바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회적 냉대가 심해지면서 당시 전교조 참가 교사들은 부모와 가족등 가장 가까운 친지들에게서까지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극심한 사회적 냉대와 해직으로 경제적 곤란이 겹치면서,또한 합법화를 위한 투쟁과정에서 결혼 적령기를 놓쳐 현재까지 혼자사는 노총각 노처녀가 경북에서만 19명에 이른다. 이들의 안타까운 청춘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또 해직후 건강관리에 실패해 숨진 동료 후배들이 너무나 많다. (이때 김교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렸다. 감정이 복받치는 듯 했다). 이들의 가슴아픈 죽음을 잊은 적이 없다. ▲합법화 된 뒤 전교조와 교육당국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근로조건, 임금, 후생복지등에 대한 협상을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전교조가 점차 이익집단화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해직당시 1500여명이던 조합원이 합법화 된뒤에는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양적으로 성장했다. 조합원 수가 팽창하면서 개혁의 성향이나 속도가 둔화되고 있는듯한 느낌이 있고, 그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다. 창립 1세대로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면서 우려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시각은 일부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 실제로 교섭과정에서 후생복지에 관련된 내용은 전체 교섭사항의 10%에 불과하며, 당연히 교섭의 주내용은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민족의 장래에 관한 참교육과 참교육을 위한 교육여건 개선에 맞춰져 있다.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이라는 창립당시의 참교육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며, 후배교사들도 끊임없이 자기개혁, 자기혁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4년7개월간의 해직기간을 거쳐 94년 3월 복직한 김교사는 현재 신라문화동인회회원으로서 문화유적답사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박물관 학교등에 틈틈이 출강하거나 또 직접 답사안내를 하고 있다. 한림야간학교 교사생활이나 전교조가 매년 개최하는 어린이날 행사, 청소년 농사실습등도 그가 평소에 생각하는 참교육 실천 활동의 하나다. 해직기간이나 복직이후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그의 고물자전거와 남루한 양복한벌로 대변되는 검소한 생활, 그리고 여느 젊은이 못지 않은 부지런함과 세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다. 잘못된 세계화 논리가 교육현장을 다시 입시위주의 벼랑끝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우리의 척박한 교육현실은, 치열한 현장에서 한발쯤 뒤로 물러서서 쉬어도 될성 싶은 58세의 노교사를 또다시 20대 청년교사보다 더욱 바쁘고 쉼없이 움직이게 하고 있다. 참교육을 위한 열정과 잘못된 교육정책이 그를 다시 청년교사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인물 스냅 세로1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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