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엿밥 한 그릇으로 허기와 추위를 달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켜 온 양북면 어일리 5일 장터 장터에 팔리는 물건은 바뀌었어도 옛 모습 스며 있어 경주시내에서 4번 국도를 타고 문무수중왕릉이 있는 양북면 봉길리 쪽으로 35분 가량 차를 몰고 가면 양북면 어일 삼거리를 막 지나 60여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세월을 견디어 온 어일 장터가 이방인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는 편리한 교통으로 장터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5일장(5, 10일)이 열리는 날이면 인근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의 추억의 장소가 된다. 오랜 세월을 지탱해 온 허름한 장옥, 새벽같이 나온 봇짐 할머니들의 허기를 달래는 국수집, 세월은 변했어도 아직은 시계를 30여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한 그림이다. 4천여 평에 달하는 넓은 장터를 돌다보면 장옥 한 편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삼삼오오 모여 입맛을 훔치며 숟가락 들기에 분주하다. 언뜻 보면 감주(단술)같은데 이곳 장터에서 49년 동안 가장 인기를 누려왔던 `엿밥`(엿을 만들 때에 엿물을 짜 낸 밥 찌꺼기)이다. 장터에서 엿밥 할머니로 통하는 권중상 할머니(75·감포읍 노동리)의 손길은 아침 허기를 달래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름에 바쁘다. 한 그릇을 가볍게 비운 한 할머니는 "여어 4백50월밖에 없데이~" "그것만 하면 됐다 모자라면 어떻노"라는 권 할머니의 대답이 50년 가까이 나눈 정을 느낄 수 있다. 49년동안 5일장이 열릴 때마다 쌀로 만든 엿과 이를 재료로 만든 엿밥을 팔아왔다는 권 할머니는 "시집와서 젊은 시절에 살아가기 위해 시작한 엿밥 파는 일이 어느 듯 내 평생의 일이 되었지" "아들 넷, 딸 다섯을 키워낸 게 바로 이 엿밥이야"며 이른 다섯 할머니로 보이지 않은 건강은 모습에 넉넉한 웃음이 해장국보다 더 낫다는 엿밥 맛의 깊이와도 같았다. 옛날에는 엿과 엿밥을 이고 지고 이웃 감포읍내와 양남 장터까지 다녔지만 이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집에서 가까운 어일 장터에만 나온다는 권 할머니는 한 그릇에 5백원씩 받아도 찾는 사람이 많아 언제나 모자란다고. 장터에는 타지에서 물건을 싣고 와 파는 떠돌이 상인들도 많았지만 권 할머니처럼 한 평생을 장터에서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 둘이 아니다. 이곳에 시집 온 후 집안에 큰일을 제외하고 장이 열릴 때마다 해마다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과 채소를 갖고 나와 팔아 왔다는 김 할머니(77). 이날 김 할머니는 더덕을 한 보따리 거의 다 팔고 마지막 떨이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개나리 봇짐을 지고 2~30리를 마다 않고 다녔던 젊은 시절의 장터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5일마다 열리는 장터에는 이들의 삶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옛날부터 어일 장터에는 인근에 어촌이 있어 내륙지방의 장터에 비해 해산물이 많았으며 깊은 산속에서 나는 산나물과 더덕, 두릅 등과 암반석 위에서 나는 쌀이 유명했다고 한다.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아침 7시에 장이 열려 하루 종일 장터가 붐볐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줄어 오전이면 장이 파한다고 한다. 50년간 장터를 지켜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욕심은 옛날 장대했던 장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곳이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다가 어일 장터를 구경하더라도 부끄럽지는 않도록 보수라도 해 주길 바라고 있다. 장이 파할 즈음에 뒷짐지고 걸음 하시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보따리를 이고 뒤따르는 할머니의 모습이 60여년 전에 첫 장이 열리던 옛 어일 장터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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