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처럼 사람은 백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하지만 그 사람의 혼이 스민 작품은 수천 년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은 채 살아남을 수도 있다.
서각(書刻)이란? 나무, 금속, 상아 등의 여러 재료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조형예술이다. 서예나 그림이 가진 예술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으면서 서각가의 칼끝에서 표출되는 미려한 조형감각과 예술성이 더해져 한층 더 돋보이는 작품으로 승화하는 것이 서각이다. 그래서 서각에는 서예나 그림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맛과 멋이 있다.
서각은 공공건물이나 사찰, 재실의 현판을 비롯한 주련(柱聯) 등 주로 글자를 목판에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칼과 끌, 망치 등을 사용해 글씨나 그림의 맛과 특징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경주의 대표적인 서각가 하정 윤병희 선생은 “서각(書刻)은 서예와 미술, 조각, 목각 등을 두루 겸비해야하는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1941년 경주시 북부리에서 태어나 계림초등과 신라중, 경주공고를 거쳐 대전대학교를 나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주에서 금방을 경영하던 선생이 서각을 만난 것은 20대 중반이었던 1965년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김한천(金漢天) 선생의 ‘대월상제’(對越上帝 : 마치 하느님을 대하듯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지극한 정성과 공경으로 깨어있으라)를 새긴 서각에 매료되어 하루 종일 그 작품 앞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선생은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땐 그게 무슨 글자인지,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보는 순간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눈을 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고급시계(당시 시가 7000원)와 금 3돈(당시 1돈에 3000원)을 챙겨가서 하루 종일 졸라 결국 그 작품을 손에 넣었다.
이를 계기로 선생은 서각공부에 매진했다. 한 달에 5~6회씩 서울을 오르내리며 오옥진(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선생과 교류하면서 서각공부에 열중했다. 또한 통신강좌를 통해 전각(篆刻)도 공부했다.
“서각은 공부하면 할수록 작품세계를 알면 알수록 더 어렵고 겁이 난다.”는 선생은 지금까지 개인전 한 번 가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칠순을 맞은 올해는 용기를 내어 가을쯤에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자연현상의 세밀한 관찰과 명상을 통해 영감을 얻고 그 감흥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한다.”는 선생은 돌, 나무 등 자연에서 채취한 자연재료와 칼과 끌과 망치만으로 작품을 하는 전통 서각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전각의 경우도 일반적으로는 조각하기 쉬운 납석이라는 묽은 돌을 소재로 쓰는데 반해 선생은 주로 오석계열의 단단한 자연석을 소재로 사용한다. 따라서 선생의 작품은 그 소재가 지닌 자연적인 특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선생의 예술성을 보태는 방식이어서 독특한 맛이 있다.
‘쉽고 빠르게’를 중시하는 사상이 만연한 현대 사회 속에서도 선생은 여전히 자연과 전통을 고집한다. 조금 수고롭더라도 자연재료와 전통방식을 통해 나무와 돌과 쇠에 혼을 불어 넣어 살아나게 한다. 그래서 선생의 서각은 더 깊은 맛이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선생은 “칼은 붓보다 훨씬 예리하고 날카롭기 때문에 서각은 글씨나 그림에 비해 훨씬 더 섬세하고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붓글씨보다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서각은 오랫동안 살아남기 때문에 “글자 한자 한자에 혼을 불어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서각을 자신의 분신을 빚는 성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은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해왔으며 고성 통일전망대의 ‘민족숙원평화통일’을 비롯해 최치원선생 제실, 토함산 통일대종 현판, 불국사 정회루, 경주시립도서관, 안압지 연꽃단지 연화정, 인촌기념관과 경주시청민원실의 ‘공선후사’ 등이 손꼽힌다.
‘연화정(蓮花亭)’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많이 찾는 연꽃단지의 정자에 현판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선생이 손수 새겨 기증한 작품이다.
선생은 1986년 10월 동아일보 지령 2만호기념 휘호 초대전에 운보 김기창(동양화), 원곡 김기승(서예), 남 관(서양화) 등과 함께 서각부문에 초대된바 있으며 일본과 중국, 싱가포르의 유명작가들이 참석하는 국제서각가전을 비롯해 일본작가 초대전과 일본 문화원 초대전, 국내 서각가 6인전 등에도 초대된 바 있다.
대한민국서각대전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과 한국미술대전 심사위원, 국제서각연맹 이사, 한국서각협회 자문위원 및 이사 등 한국서각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서각 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즐겁다. 서각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선생은 “내가 하고 싶은 각을 할 수 있고 또 내 작품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누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은 작품을 돈과 무관하게 많이 나누어 주고 싶어 한다. 예술도 상술로 변모해 가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당신이 지닌 능력을 사회에 되돌려 주고 싶다는 선생의 모습에 참 예술의 아름다움이 엿보였다.
선생은 부인 김영숙 씨(67)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고 있으며 현재 계림초등학교 동편에서 ‘하정 서각원’을 운영하며 작품활동과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글.사진 / 김거름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