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으로 내려 뻗히던 토함吐含의 능선이 용마루 끝에서 차분히 멈추어 선다.
무설전無設殿 지붕위로는 하얗게 눈발이 쌓였는데 어제 마침 내린 백설에 잠기어서 불국佛國은 지금 멀리로 화엄의 길을 가는 중이다.
자하紫霞의 문을 지나고 대웅전 회랑大雄殿 廻廊을 돌아서 꽃잎 향기로운 봄날의 기억을 더듬는 듯 한걸음 두 걸음 다가서는 적요의 뜨락.
조용히 설법은 없고 그저 다만 묻어나는 한줄기의 여운일 뿐 지난 밤 불국사 궁궐에는 또한번 눈의 세상 백설의 나라가 중창되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기록에 의하면 현세의 부모에 대한 은공으로 김대성金大城이 지었다고 하는 절, 불국사佛國寺
이 어찌 우리 한옥에 대한 역사성을 웅변하는 건축미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실로 화려 장엄한 가람의 규모 앞에서 가슴 뿌듯한 민족의 자긍심를 느낀다.
어떻게 이렇듯 훌륭한 집을 지어낼 수가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신라新羅야 말로 참으로 위대한 문명적 고대국가였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산자락의 비탈진 땅, 높낮이가 고르지 못한 지대에 적응하여 높은 곳은 높은 데로 낮은 곳은 낮은 데로 돌축대를 쌓아서 단단히 다지고서는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워 벽을 올린 뒤에 은근 슬쩍 추녀 끝을 치켜 올린 기와지붕의 비상, 이 얼마나 자연 친화적 건축술의 극치던가 말이다.
더우기나 사방천지 눈밭에서 보게 되는 노송老松의 설경하며.
다보탑多寶塔 석가탑釋迦塔의 대상적인 조화미.
이는 도저히 필설의 기교로서는 표현이 불가능한, 언듯 적절한 감탄사가 떠오르지 않는,
환상과 환상이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투명한 입체의 세상이다.
여기는 불국의 나라, 눈꽃이 피어 있다.
천년이 지나고 또 천년이 가도록 차라리 말 대신 내려앉은 무설의 은광.
송이송이 우담바라 꽃잎이 벙글었다.
지금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다리 위엔 반짝반짝 극락으로 밟아오르게 될 한단한단 유리층계가 만들어지는 중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