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을 축하드린다. 먼저 수상 소감은 고맙다. 무엇보다도 박목월 선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을 제가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박목월 선생은 시인으로서의 제 근원 속에 깊이 자리하고 계신 스승이시기 때문이다. 목월문학상은 허영자, 허만하 시인에 이어 제가 3번 째 수상을 하게 되었다. 이 상이 가지는 권위와 명망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하겠다. ▲를 쓴 계기는 시집 에 실린 시편들은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그리고 울산 바다의 ‘고래’를 대상으로 쓴 시편들이다. 제가 이런 시적 제재들을 시로 쓰게 된 것은 그것들을 통해서 원시적인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그냥 형태나 흔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목소리와 숨소리로 시인인 나에게 강렬한 생명성을 깨우쳐주었다. 저는 ‘반구대암각화’외 ‘천전리 각석’과 ‘고래’를 통해서 6천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반구대 암각화의 사람들과 2천여 년 전의 천전리 각석의 사람들, 그리고 3천만 년 전엔 육지의 동물이었던 것들이 바다로 옮겨갔던 고래의 먼 후손들을 2000년대인 ‘지금’ 만나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기쁘기 한량없다. ▲작품 완성까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의 시편들을 쓰는 동안 숱하게 울산을 오르내렸다. 울산에 와서 배를 타고 고래를 만나러 다니곤 했다. 비오는 날, 아무도 없는 ‘반구대암각화’ 의 벼랑을 몇 시간씩 바라보곤 했었다. 시인은 외로움의 극한까지 가서야 몇 줄의 시를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울산에 가서 머무는 열흘, 혹은 일주일쯤의 시간동안 울산의 강동 바닷가에 머물곤 했다. 마치, 먹이를 찾아 까마득한 산꼭대기를 헤매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울산 구석구석을 헤매 다녔다. 현대화 된 공업도시 울산을 헤매 다니며 6천여 년 전 반구대암각화를 만든 사람들과 2천여 년 전 천전리 각석의 사람들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목월문학상을 수상하셨는데 생전의 목월 시인과의 회고담은 제가 처음 박목월 선생을 뵙게 된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59년이었다. 그때, 댁으로 선생님을 찾아갔었다. 그런 인연으로 어린 소년의 가슴 속에 ‘시인’이라는 삶의 씨앗이 자리 잡게 되었고, 그 뒤, 선생께서 타계하신 1978년까지 선생을 지근거리에서 모실 수 있었다. 선생을 통해서 시인이 지녀야할 삶의 태도와 시를 쓰는 방법까지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제가 시인이 되어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선생께서 ‘네가 시를 쓰다보면 이만하면 되었지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네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시단 등단 40년을 훌쩍 넘고 있습니다만, 그 말씀은 늘 각성의 채찍이 되어 저를 지켜주고 있다. 저의 오늘이 있게 한 스승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의 수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 나태하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깨우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박목월 선생께서 회장으로 발전의 기틀을 잡아 놓은 한국시인협회 회장의 직책을 제가 맡게 된 것은 금년 3월부터였다. ‘사람에게 유용한 가치를 제공해주는 시’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목월 선생의 유업을 계승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들(이해준 한양대교수)이 아버지의 시를 텍스트로 몸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춤을 선보였 는데 시(문학)와 춤을 어떤 연관선상에서 놓고 말할 수 있는지 원래부터, 시와 무용과 음악은 한 몸이었다. 무용과 시는 그 표현 방법이 ‘몸의 언어’와 ‘문자 언어’로 하고 있습니다만 그 바탕은 시정신(poetry)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다. 아들 이해준 교수는 어려서부터 많은 시를 암송하고 읽으면서 자랐고, 또 시인인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온 것 같다. 아들 해준이는 우리나라에 유일한 문학박사이다. 시가 지니는 비유와 상징의 함축 언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용계에서 시무용(poeticdance)이라는 독자적 장르를 개척한 것이 해준이다. ▲한국시인협회장으로서 한국시류나 방향에 대한 소견 한국시인협회는 1957년 청마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선생 등이 주축이 돼서 만든 단체이다. 그러니까, 6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셈이다. 시를 사랑하고 애호하며 독자에게 곡진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좋은 시를 쓰도록 노력한다는 목표아래 만들어졌다. 한국현대시의 정통을 지켜가는 한국시의 대표적 시인들이 한국시인협회를 이루면서, 우리 시대의 지성과 감성의 지킴이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시가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제시하고, 시가 사람에게 유용한 가치로 활용될 수 있는 좋은 시를 제공할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시가 시를 쓰는 사람들 끼리나 읽을 수 있는 암호문서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인은 상식과 추상으로 둘러싸인 세상을 ‘밝은 눈’으로 밝혀서 가리워진 세세한 본질들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고, ‘맑은 귀’로 신비한 생명의 파장까지를 찾아서 독자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시인들이 쓴 시가 독자들에게 맑고 밝고 깨끗한 삶을 제시해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씀이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를 쓰는 시인 자신이 시적인 긴장(tension)을 잃지 말아야 한다. 늘 추상과 관념으로 싸인 사물과 현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좀 더 외로움의 극한으로 다가서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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