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과연 ‘문화’가 있는가? 생뚱맞게 화두를 던져 본다. 우리는 ‘경주’를 말할 때 곧잘 ‘문화관광도시’, ‘역사문화도시’라는 수식어를 지명 앞에 앞세워 붙인다. 신라 문화와 조선 문화가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가 있으며, 전통문화가 있기에 그런 것일까. 우리나라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문화양상이 많다고 여겨서 그럴까. 아니면 스스로 막연하지만 문화가 많다고 여기는 것일까.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담아 쓰고 있는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거창하게 사전적 의미까지 들추어 뜻을 찾으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된다. 적어도 경주는 유무형의 전통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사회양상을 계승하고 있으며, 이를 오늘날에 재창조하고 있다는 의미로 ‘문화’를 쉽게 쓰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예술과 문학, 축제, 놀이의 문화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의(衣)·식(食)·주(住)에서 ‘경주 문화’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내외국인들이 경주에 오면 흔히 ‘볼 것이 없다’거나 ‘특색이 없다’는 말을 쉽게 한다. 아마도 신라 천년 왕도의 고대도시요, 조선 문화와 학맥이 이어진 고풍스런 고장이란 선입견으로 찾은 경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럴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며, 가장 경주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다. 경주에 ‘의(衣 )문화’가 있는가? 신라왕도에 걸맞은 신라 복식이나 한복을 입고 있는 곳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또 마음껏 입어 볼 수 있는 곳이 어디 한 곳이라도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외지인들은 경주에서 만이라도 전통복을 입은 모습을 동경한다. 문화의 거리라고 치장을 한 지역이나 주요 관광지의 종사원이라도 신라복이나 한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본다. 궁극적으로는 경주시민이 거리를 나다닐 때 전통복을 입도록 무상으로 지급하고 입고 다니는 날만큼 수당을 지급하면 경주는 정말 달라질 것이다. 최근에 신라음식을 찾고 복원한다며 뜻있는 단체에서 연구·개발하고 있다. 사실 신라음식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고 전승된 바가 없기에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흔히 한식이라고 하는 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여러 곳이 있다. 다만 경주지역 각 가문의 종갓집에서 이어지고 있는 음식문화를 집대성하고 이를 먹어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한옥으로 된 한식당 몇 곳에서라도 신라토기로 만든 그릇만으로, 또 길쭉하고 곡선으로 된 신라 숟가락으로 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신라의 식문화에 좀 더 다가가지 않을까. 조선시대 양반가의 식문화를 위해서는 백자나 분청사기 같은 도자기나 유기 반상에 차려 내는 경주다운 식당을 생각해 본다.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에는 신라 월정교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여름에는 경주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주시청에서는 교촌 마을을 정비하고 복원하여 숙식과 민속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하고 있다. 또 대릉원 서쪽의 황남동 일대 한옥 밀집지역의 주거환경을 개선하여 이곳을 걸으며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정말 잘 된 일이며 기뻐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집 즉, 기와집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하자는데 뜻이 있을 것이다. 주요 지역이나 도로의 경우 양쪽으로 일정거리 안에는 기와집 한옥을 건축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뜻이다. 그러나 늘 형평과 비용의 문제에서 시민과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어차피 규제할 바에는 나무로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를 결구하고 기와를 얻어 제대로 된 전통 한옥을 짓게 하되 건축비의 절반 정도를 지원해 주는 제도를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어 본다. 또 시가지 등의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건물도 중국에서 많이 보는 것처럼 층간에 한옥식 기와처마를 시공하여 외향을 고풍스럽게 한다면 50년, 100년 후에는 이것도 명물이 될 것이다. 백제의 고도 부여에서는 ‘백제문화재현단지’를 만들었다. 이것을 보고 많은 경주시민은 충격을 받았다고 아우성이다. 규모도 어마어마하지만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들여서 만든 ‘포장된 백제’이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경주는 있는 것도 살려내지 못하니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월성(반월성) 빈터에 왕궁을 세워 보자. 동궁(안압지)의 이 빠진 공간에 전각을 넣어 보자. 황룡사의 황량한 터에 절간을 재건해 보자. 신라 귀족 저택으로 추정되는 용강동 원지 유적을 살려 보자. 발굴 후에 남아있는 유구는 철저히 보존하되 그 위에 재건을 한다면 원형복원의 논란은 피해 갈 것이다. 더 나아가 외곽지 어느 곳에 ‘신라왕성’을 조성한다면 궁궐도 넣고 민가, 사찰, 공방도 넣어 한국민속촌 같은 명소가 될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신라를 옮겨 놓은 것 같은 분위기에서 신라 사람이 되어 보는 꿈, 이는 경주시민의 의지에 달려있다. 경주에 과연 ‘문화’가 있는가? 우리 마음속에 잠자고 있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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