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나라 용궁으로 가고 싶다.
화려 장엄한 영락의 세계, 무구한 천년 화계의 길을 더듬어서 다시 한 번 그 세월로 되돌아가고만 싶어진다.
신라 절터 창림사지昌林寺址에서 역사의 화신으로 굳어 있는 쌍두귀부雙頭龜趺의 묵언을 전해 듣는 날.
서남산西南山 자락의 빽빽한 송림에 잠기며 혼자의 충만함으로 호젓이 거닐고 있다.
뱀의 꼬리인 것처럼 숲 속을 빠져 나가는 저 휑한 오솔길의 끝에서 갑작스레 밀치고 들어서는 찬바람의 겨울이 느껴진다.
어느새 혹독한 계절이 여기까지 왔던가?
간밤의 추위에 부르튼 잎새의 상처, 이제 남은 시간들은 떨쳐야한다.
휘르라니 숙명으로 조락하는 낙엽의 꿈, 그 아름다움의 절규.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스스로의 길을 따라 순순히 가고 있는 것을….
여기 신라新羅의 고찰이던 창림사 절터.
이곳은 원래 건국 당시에 최초의 궁궐이 조영된 자리였다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나라의 시조왕인 박혁거세朴赫居世와 알영부인閼英夫人이 13세가 되는 동안 이 부근에서 성장했으며 임금이 되고서 집정한 왕궁터였다고 일러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지역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곳이기도 하려니와 남산南山 일대에 남아있는 수많은 절터 중에서 이름과 근거가 가장 확실한 유적의 한 곳이다.
해목령蟹目嶺과 남산성南山城을 뒤로 하고서 그 동쪽 자락의 끝부분인 평평한 지대에 자리한 절터에는 목이 파괴되고 비신마저도 없어져 버린 한덩이의 돌에 한 쌍으로 조각된 거북돌이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듯 동적인 모습을 하고서 있다.
이 무슨 까닭이었으랴 마는 천 오백년을 지켜온 긴 세월이었고 보니 어찌 그냥의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날 수가 있었겠는가?
이런저런 말 못할 수난사를 거북이 저들만이 알고는 있으리라.
중국에까지 알려진 유명한 신라의 절 창림사!
이는 쌍귀부의 등에 세워졌던 없어진 비문 때문인데 다음과 같은「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서 내용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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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폐사가 되고 옛 빗돌만이 남았다. 글자 또한 알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원元나라 학자인 조맹부趙孟?가 창림사 비문의 발문에서 적기를「이것은 신라의 중인 김생金生이 쓴 것인데 창림사 비라고 한다. 자획에 법도가 깊고 훌륭해서 당의 명각名刻인들 멀리 미치지 못하리라. 옛말에 이르거늘 어느 땅엔들 인재가 나오지 않으리오. 라고했는데 과연 정말 그렇도다.”
하면서 말했듯이 원나라 조맹부의 말에서처럼 당의 명필로도 멀리 미치지 못한다고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만큼 김생의 글은 신라를 대표하는 천하제일의 명필로 지칭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창림사 절은 역사속의 전설로만 있을 뿐 남은 건 여기저기 골짜기에 흩어진 몇몇 개의 초석 뿐인 것이 안타깝다.
기록이 미흡하여 절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46대 왕인 문성왕文聖王 17년의 창림사 탑기로 보아 신라 하대의 절인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그러기에는 조각의 솜씨에서 8세기 초의 활달한 경향이 짙어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까?
절터에서 산록으로 향하는 동쪽의 3~40미터쯤에 이르면 몸집이 크고 매우 잘생긴 삼층석탑 한기를 만날 수 있으니 창림사 탑이다.
보호 철책이 둘레의 주변을 경계 짓고 있는 탑신의 언저리 마다에는 참나무의 낙엽들이 눈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이 저나 나나 지금 어쩌지 못하는 산속의 고독한 신세임을 말없이 수긍하고 있다.
이 탑은 몸의 전부가 남쪽 방향으로 허물어져 있던 것을 지난 1979년 문화재 관리국에서 복원하였다. 당시에는 탑신의 석재 상당수가 없어졌던 터라 일부는 새로 다듬은 돌로 짜 맞춘 것으로 완벽한 제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 외형이란 크게 다르지 않아 창림사의 사찰범위와 대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탑의 특징이라면 팔부신중이 조각된 것이라든가 탑신에 부조된 문비의 도드라짐일 것이다.
문이 열리는 저 안의 다른 세상은 어떤 곳인지.
새누리의 밝은 땅 구원의 정토로 가는 길이 거기로부터 통할까?
구름을 타고서 내려 앉은 아수라상의 등 뒤로 끝없이 내다보이는 탑 속의 무한한 세상에다 내 몸을 던져서 날리고 싶다.
여기는 트인 듯 갇혀있는 공간. 저 속이야 말로 갇힌 듯 한없이 개방된 귀천의 나라이기도 하리라. 아무렴 여기보다야 저쪽이 낳을 듯싶은 것이 낙엽을 공양으로 받은 탑이 곧 부처인 까닭에서이다.
티끌 먼지가 날리는 속진의 인간세상을 등지고서 무념무상으로 서 있는 석탑의 위용.
그 넉넉함과 초연함으로 하여 깊어지는 환상의 지경 속에 내가 섰다.
왔던 길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곧 다시 옮길 수밖에 도리 없는 발걸음 가야한다. 인간사로 얽혀 있는 인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인즉 숙연하게 제 갈길로 따라서 낙엽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말이다.
창림사! 번창할 숲속의 절. 배동 산 6-2번지.
나는 여기서 간절하게 극락을 조망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