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경주시는 고도보존특별법 개정에 따른 고도육성계획안에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5억원 예산으로 용역을 발주해 고도보존계획을 수립중이고 완료시기가 오는 연말로 다가왔다. 이와는 별도로 1억 8천여만원의 예산을 경북연구원(동국대 강태호 교수)에 지원, 고 도육성 포럼 운영, 그리고 고도육성계획을 경주시민들에게 홍보하는데 사용하도록 했다. 그런데 보문 교육문화회관에서 “경주고도육성” 시민대토론회도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 중에 하나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시민단체회원들의 강력한 반대와 항의로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토론회를 주최한 교수들과 시민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일부는 몸싸움도 벌였다. 물론 이 자리에 격려사를 위해 찾았던 문화재청과 국회의원과 시장은 한마디도 언급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허겁지겁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이날 시민대토론회는 관계자 모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행사였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계획을 가진 정책이라도 피해당사자인 시민들에게 사전 설명도 하지 않고 몇몇 인사들만이 참여한 채 비밀스럽게 추진되는 정책과 행사는 성공을 거두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주최 측의 주장대로 이 같은 “고도육성계획”이 경주시민들에게 득이 되고 경주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왜 경주 시내를 떠나 굳이 보문단지에서 그것도 일부들만 초청한 채 진행됐는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청과 경주시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성과를 거둬야 하는 절박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당한 행정행위라도 절차와 과정이 있고 더구나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동의와 공감대”가 절대적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정권시대에도 이렇게 밀어붙이기 식의 추진사례는 없었다. 경주시내 중부, 황오, 황남, 쪽샘지구 등을 “문화재정비계획” 이유로 무차별 철거만 한 후 또 앞으로 보상해 주어야 할 시민 사유재산을 방치한 지역을 보십시오. 이곳에 살고 있던 우리 이웃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한 어머니가 절규하였고 지난 50년간 묶지 말고 먼저 이주대책을 세우거나 현금보상과 토지보상을 적절히 하는 배려를 했더라면 정든 고향땅을 떠나는 눈물겨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날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지금까지도 속아왔는데 두 번 속을 수는 없다는 경주시민들의 절규를 여기저기서 보았습니다. 최근 정부나 지자체는 용역을 너무 좋아하고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 같다. 특히 일부 대학교수들에게 발주하는 용역은 수적으로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신뢰 면에서도 너무 맹신하는 것 같다. 용역이 잘못된 점이나 여론을 피해가는 면피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주고도육성계획 수립 용역도 마찬가지이다. 경주시민생활 현실과는 동떨어지고 외국 특히 일본의 사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태반이고 “고도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규제를 더욱 더 강화하려는 의도가 곳곳에 깔려있다. 수십년간 재산권 침해만 받아온 경주시민들로서는 이를 쉽게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시민들은 이날 발표 내용을 들어보고 차근차근 따져보자는 본인의 간곡한 제안도 거절한 만큼 흥분되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날 주최 측의 여러 활동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1년 전부터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30명 단위로 교육생을 모집, 일방적인 유리한 여론 형성을 위한 흔적이 드러났고 또한 시내상가 단체들 간에 분열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시민들이 흥분한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고도육성계획수립은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날 벌어진 갈등은 효율적이고 신속한 고도육성 계획 수립을 위해서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취해야 할 후속대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바로 지금까지의 발주도니 용역 결과를 무시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다소 예산상 부담은 있겠지만 시내권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 용역을 발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존 용역발주 기관과 시민들이 선정 발주한 용역기관 끼리 사전 충분한 의견조율을 거치고 그 과정에 시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그리고 나서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한쪽 주장만 되풀이 해 신뢰성과 객관성을 잃은 용역 결과로는 평행선만 달릴 뿐이다. 같은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연 어떤 방법이 효율적인지 관계자들은 심사숙고 해 보길 바란다. 문화재청, 경주시, 시의회, 시민단체 모두 훗날 경주에 살고 있을 후손들에게 적어도 부끄러운 욕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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