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태(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부처장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원전 가동 30년만에 20기의 원전을 보유한 나라로 성장했다. 원자력발전 설비 용량면에서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독일에 이은 세계 6위의 원자력 강국이다. 최근에는 아랍에미레이트에 우리의 고유 모델인 원전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운영에서는 A학점을 받고 있지만 방사성폐기물 관리에서는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 우리의 현실을 비교할 때 지난 20년간 우리의 성적표는 참으로 초라하다. 일본이 국가적 장래를 위해 필요한 시설들을 하나하나 갖추어 가는 동안 우리는 천신만고 끝에 이제 겨우 중저준위 처분장을 건설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스위스, 핀란드 등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연구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 그들은 지하 심부(深部)에 동굴을 굴착해 자연방벽에 대한 연구를 벌써부터 해오고 있다. 원전이 4~5기에 불과하고 인구가 7,8백만에 불과한 핀란드와 스위스의 사례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있다. 경주에서는 현재 방사성폐기물을 지하에 쌓아 둘 동굴을 굴착하느라 바쁘다. 울진원전의 폐기물 포화를 고려해 의욕적으로 앞당긴 공기(工期)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지질 안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암반 등급이 낮고 지하수가 많은데 과연 안전하게 처분장을 건설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다. 지하의 지질 상태는 지표에서와 같이 복잡하고 다양하다. 불행히도 지하상태를 거울 보듯이 완벽하게 볼 수 없는 것이 현재의 기술적 한계다. 그래서 처분장을 연구, 설계, 건설하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보수적 자세(conservertism)를 견지한다. 특히 안전성 평가는 인공 방벽의 효과를 무시하고 자연방벽 특성을 입력해 수행한다. 우리나라는 처분장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사선량을 연간 최대 0.02m㏜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와 스웨덴의 처분장 운영 경험에 의하면 실제 측정된 방사선량은 연간 0.01m㏜로 X선 가슴 촬영시(0.3~1m㏜)에 비해 1/30에 불과하다. 일본의 중준위폐기물 처분동굴 예정지의 암반은 부석 응회암으로 암반을 망치로 긁으면 부스러졌고 손톱으로도 긁혔다고 한다. 이 지층은 암석강도가 낮은 암반이어서 약 1㎞를 굴착하면서 화약 발파를 하지 않고 헤드로더라는 기계로 굴착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동굴의 암석학적 안정성(stability)과 처분장의 방사선적 안전성(safety) 문제는 처분장 설계와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암반에서 부분적으로 파쇄대가 존재하고 여기에서 지하수가 스며 나오는 현상들은 터널현장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아오모리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신칸센 해저터널 공사는 당초 예정 공기보다 훨씬 더 늘어났다. 지하암반의 상태 때문에 굴착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기술적 문제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이 내린 결정을 따른다. 경주 방폐장 현안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문제들을 잘 해결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이 과거 20년 동안 준비해 왔던 것처럼 중저준위 처분장 보다 국가적 미래에 더 중요한 원자력 시설들을 앞으로 어떻게 건설해 나갈까를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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