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안고 휘어지는 풀들의 마른 몸
포리浦里마을 갯가의 풍경이란 가을엔 더욱 스산하다.
낭산狼山의 동쪽을 지나온 선창거랑의 합수合水.
길처럼 훤히 트여 있는 강나루의 저 모롱이에서 휘파람인 듯 이상한 소리가 가끔씩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나면 그것은 강가에서 불러대는 갈대바람의 서글픈 노래인 것이다.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모래밭이 넓다랗게 펼쳐진 샛강.
그 강변길 따라 천천히, 천천히 혼자 걷고 싶어진다.
걸을 동안에 사색의 깊이로 한없이 빠져드는 것이랴!
속속들이 엉기어 있는 애절함을 자아서 한줄기의 눈물로 내리게 하고 싶다.
그 눈물에 적셔 있는 파리한 모습의 잔재들.
무슨 일이지 기억이란 기억은 죄다 우수의 빛으로 물들어 간다.
만약에 이름을 부른다면 그대 뒤돌아보기나 하랴만, 만약에 손을 들어 흔든다면 그대 울어주기나 하랴만,
속절없게도 떨쳐내지 못하는 미망들을 켜켜이 마음에다 재이고 또 재인다.
흐르는 물, 떠나는 사람
세상에 어느 인연이 이별 아닌 게 있던가요?
세상에 어느 이별이 눈물 아닌 게 있던가요?
보내는 사람, 돌아보는 눈길, 아득히 멀어지는 세월에도 쉽사리 되감지 못하는 인연의 실마리가 있다.
장사長沙, ‘장지버든’의 갯마을.
신라新羅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이야기가 촉촉이 하상으로 번져있는 여기.
냇물이 흐르고 개흙이 쌓여 붙여진 이름이 동남산東南山의 한 끝자락, 포리浦里인 것이다.
신라 19대 임금 눌지왕訥祗王 2년 10월인 가을, 지금의 이맘 때였다.
왜국倭國에 볼모로 잡혀있던 왕의 둘째 동생인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해 오라는 어명을 받들어 집에도 들리지 않고 그대로 말을 몰아서 단걸음에 양남陽南의 율포栗浦 바닷가로 달려간 박제상, 그는 잠시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왕제의 구출작전 임무를 수행하는 몸으로써 한시가 급한지라 어찌 잠깐의 순간인들 머뭇거릴 수가 있었겠는가?
뱃머리는 급히 돌려 포구를 떠나고 산천은 뒤로 물러나 가물거리기만 하는데 뒤따라 지아비의 모습을 쫓으며 허겁지겁 달려 왔던 박제상의 아내 국대부인國大夫人, 이윽고 바닷가에 이르러 더 이상 그를 따를 수가 없게 되자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면서 다시 서라벌로 향하게 되었다.
토함산의 바딧재를 넘고 춘령을 지나고 진티마을을 거쳐서 여기 집으로 가는 도중의 갯마을에 이르렀을 때였으리라.
박제상을 등에 태워서 달렸던 말은 제걸음으로 혼자 여기에까지 되돌아오고 걸음이 지친 부인은 그만모랫벌에 엎드려 쓰러진 채 실신하고 말았다.
안그래도 이미 지난 2월 추운 겨울에 왕의 첫째 동생인 복호卜好왕자를 인질에서 구출하여 한차례 고구려를 막 다녀오게 된 바로 직후인데도 집에 들릴 여유조차 없이 왕명을 받들어 출국하였고 보니 오죽이나 지아비가 원망스럽고 또한 그립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충신의 길은 한 갈래, 가정보다는 나라와 왕실이 먼저라고는 하겠지만 부인께는 한마디의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말없이 떠나야 했던 박공, 그의 내심인들 표정과는 달리 편치는 못했으리라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때문인 것이다.
실신한 부인의 몸이 뻣뻣하게 늘어져 있었던 갯가.
여기 망덕사望德寺 절의 남쪽 모래밭을 장사長沙, 또는 벌지지伐知旨라 불렀다고 하니 지명사地名詞의 유래가 그것이다.
-갔는가?
그대 떠난 것인가요?
그러나 아직은 우리의 손이 이별의 끝을 아주 놓지 못하는 연음連音이자 그 잇단음표의 진행임을 지금이라서 새로 깨닫기야 할까마는 스스로도 모르게 북받치는 내면의 감정이 순수한 자기 이성에 부딪혀 승화되어지는 기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슬픔이겠지요.
오늘 같은 날 이것에 대하여 뜨겁게 진정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대여!
흐르는 물은 흐르는 데로 두게 하세요.
그것이 질서요 자연의 법法인 바에야 우리의 관계는 더도 덜도 아니게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저만치 강물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길이 따라가고 있다.
나루를 건너서면 벌지지, 장사의 모래밭으로 씻기워 간 말발굽의 흔적이 아련하게 물빛에 어리어 비친다.
천년의 시공을 뛰어서 뚜구닥, 뚜구닥 말 달리는 소리, 저 소리의 장단에 어울리며 들려오는 강나루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