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집안에 걸어놓으면 액운을 막아주고 수맥을 차단해 준다고 알려진 달마도. 따라서 가정이나 사무실에 가장 흔하게 걸린 것이 달마도이다. 이처럼 너도나도 달마도를 구하는 바람에 한 때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달마도의 기와 수맥차단효과가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달마도를 걸어놓은 후부터 잠자리도 편하고 집안도 편안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경주의 대표 서각가 구봉 김진석 선생이 사명대사가 직접 그린 것으로 알려진 달마도를 수년간 100여점을 무료로 보급해 오고 있어 화제다.
경주시 천북면 화산리 입구에 위치한 경주학생예술체험학교에 위치한 구봉 선생을 찾았다. 폐교를 활용해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곳에 선생의 작업실과 서각체험학습장이 있다.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선생은 앞치마를 두른 채 서각을 공부하는 문하생들과 함께 조각칼과 망치로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벽면에 빼곡하게 서각작품들이 전시되어 마치 어느 갤러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 가운데 사명대사의 달마도를 서각한 작품도 보인다.
구봉선생은 사명대사 달마도를 무료로 보급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라고 한다. “액운을 막아주고 수맥을 차단하는 달마도의 신비로움에 빠져 꾸준히 달마도를 그렸지만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모습의 괴상한 달마도만 그려져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차라리 큰 스님이 그린 달마도를 서각기법으로 복제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명대사 달마도를 서각기법으로 나무에 새겨 목판본을 만들고 부적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기가 발생하는 신비의 광물질인 경면주사를 사용해 탁본하는 방식으로 달마도를 직접 복제했다.
“그런데 이 달마도를 가져간 사람들이 엄청난 기가 나오고 수맥이 차단되는 등 효험이 뛰어나다고 알려왔어요” 이 사실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달마도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요청이 많아 나누어 주게 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고승이신 사명대사의 달마도를 30여년을 서각가의 길을 걸어온 구봉선생이 심혈을 기우려 서각기법으로 목판본을 제작했고 또 정성을 다해 탁본을 해서인가 이 달마도는 여느 달마도와는 격이 다르게 느껴진다.
사명대사의 높은 법력과 구봉선생의 예술혼이 만남으로써 기운의 상승효과가 생긴 탓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달마도가 처음부터 기를 발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처음 달마도를 탁본했지만 수맥탐지봉(엘로드)이 반응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민하던 중 평소 가깝게 지내던 족보도서관 허개수 관장이 “향초를 피우고 예를 갖추라”고 충고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목욕재계하고 향과 촛불을 밝히고 예를 갖추어 정성을 다해 탁본을 했어요. 그랬더니 드디어 수맥탐지봉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이를 직접 실험하고 향초를 피우고 정성을 다하라고 일러준 족보도서관 허개수 관장은 “첨 구봉이 달마도를 가져와 수맥이 흐르는 벽에 걸고 수맥탐지봉으로 실험했더니 아무 반응이 없었어. 그래 구봉 보고 ‘탁본 뜰 때 향초 피우고 예를 갖추었냐’고 물었더니 안했다는 거야. ‘큰스님 작품을 예도 갖추지 않고 했으니 될 턱이 있겠냐고 했지’...그래서 다음번에 제대로 해 왔다길래 (수맥탐지봉)해보니까 되더라고...”
사명대사가 그린 달마도를 400여년만에 일깨우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그냥 복제한다고 혼까지 살아나지는 않았다. 그 혼을 일깨우는 의식과 정성이 뒤따를 때 온전히 기를 간직한 달마도가 태어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혼신을 다해 달마도를 제작하다보니 하루에도 수천장씩 찍어내는 일반의 탁본과는 다르게 하루에 몇 장 밖에 제작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도 매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한다.
“하루 10장도 못해요. 기가 빠져나가고 힘들어서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주문자는 많아도 그동안 100여장 밖에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작품이면 좀 비싸게 팔아도 될 텐데 왜 무료로 나누어 주느냐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된다면 그것으로 됐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사람에게 늘 무료로 보급할 것이라고 한다.
달마도를 소장한 사람들이 수맥차단효과는 물론 집안 액운도 막아주는 효험이 있어 고맙다는 말에 충분히 보람을 느낀다는 입장이다.
지금도 입소문을 듣고 달마도를 구하고자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오히려 즙겁다는 표정이다. 돈이나 세속의 어떤 가치로도 평가할 수 없는 예술가의 가슴 깊은 내면의 성취감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구봉선생은 기자에게도 달마도를 챙겨주시면서 “걸어만 둔다고 효험이 있는 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부처님 대하듯 예를 갖추어야 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달마도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힘은 과연 원작자인 사명대사의 법력일까? 아니면 복제한 구봉선생의 예술혼일까? 아무튼 수맥을 차단하고 가정에 평온과 안정을 가져다준다면 그것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구봉(丘峯 낮은 봉우리)이라는 선생의 호처럼 늘 스스로를 낮추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선생의 마음은 결코 낮은 봉우리가 아닌 수미산처럼 높고 큰 봉우리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