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장이다. 편제로 보면 분대장 쯤 된다. 내가 내 휘하에 있다고 생각되는 분대원은 아내, 딸, 아들 그리고 동생과 제수씨 두 분, 그리고 사랑하는 조카들이다. 모두 합하여도 12명에 불과하다. 이 시대에 자기 아내를 분대원 정도로 생각하는 나는 간이 엄청 큰 남자이며,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제수씨나 조카들까지 내 휘하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간이 큰 정도가 아니고 간이 부어도 보통 부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한편 나의 직접적인 통제의 밖에 있지만, 나에게 배속되어 나를 돕거나 간섭하는 또 하나의 지원분대도 있는데, 그들은 출가하신 세 분의 누님들과 자형들이다. 부모님의 기일이나 명절 때가 되어 동생과 두 제수씨, 그리고 조카들이 모여들면 나는 반갑고 즐거운 마음을 얼굴에 감출 수가 없었다. 제수씨와 마주 앉아 그동안 못다한 회포를 풀고, 평소 아내에게 못 털어 놓은 불만도 터트리면 제수씨들은 나의 말을 재미있게 들어주시고 적당히 편을 들어주시기도 한다. 내가 너무 눈치 없이 오버할 때도 있지만, 제수씨들은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신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오셔서 아주버님이 마음껏 떠들도록 멍석을 깔아주시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도 주고받고 적당히 취하면 나의 아들과 딸, 그리고 조카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작한다. 아들과 딸에게는 대학교를 입학하고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졸업하기 전에는 내가 밥을 산다.’ ‘ 졸업 후 취직하면 결혼 할 때까지 너희들이 밥을 산다.’ ‘결혼을 하면 너희들 한번 내가 한번 번갈아 가며 쏜다.’ 내 아들과 딸의 세뇌교육은 이미 종료되었다. 둘 다 졸업하여 제 밥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대로라면 매번 만날 때마다 그놈들이 밥을 사야하지만, 자식에게 밥 얻어먹는 것이 왜 그렇게 안쓰러운지, 오히려 내가 먼저 그 계약을 파기하고 계산대로 향할 때가 종종 있다. 어린 조카들에게는 좀 다른 세뇌 교육 내용을 적용하고 있다. 『나중 결혼해서도 설과 추석에 술병 사들고 큰아빠에게 반드시 문안 인사를 하러 오너라. 한번 정도는 봐 주는데 두 번 정도 건너뛰면 이 큰아빠가 지팡이 짚고 얄궂은 몰골로 너희 직장에 찾아가 망신을 시킬 것이다.』 명절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세뇌를 시키다 보니, 이제는 내가 첫말을 꺼내어 선창을 하면 제수씨와 조카들은 뒤에 따라올 말들을 후렴으로 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시작한 계약이지만 불문율처럼 지켜지기를 바라며, 그 약속을 지키려면 서로 자주 만나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귀찮을지 모르나, 노후를 생각하여 일찍부터 그 정도의 약속은 받아놓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박한 욕심이고, 그보다도 세 가구 아이들을 다 합해도 옛날 한 집 식구 정도 밖에 안 되는 피붙이들이 험한 세상 살아가며 힘들고 외로울 때 서로 기댈 울타리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것이 나의 속셈이다. 명절이 되면 차례를 지낸 후, 조상님들께서 터 잡고 열심히 살아오신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아이들을 옹기종기 모아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높은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또 마사토와 잔디를 미리 준비한 신주머니, 비닐 쇼핑백, 배낭 등에 담아 나이에 따라 정당히 배분하여 손에 들리거나 어깨에 짊어지게 하여 논길 따라, 개울 건너,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찾는다. 선산 솔밭 길을 일열 종대로 세워 앞장서는 분대장 큰아빠의 마음을 어린 조카들이 언제 쯤 알게 될까? 집안에 1년에 한 차례 모임이 있다. 수시로 생기는 길흉사 외에 꽃피는 봄날 소위 ‘화전놀이’ 형태의 모임이다. 근래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젊은 사람들은 미꾸라지 같이 빠지고 노인들만의 잔치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올해 이 모임에 고모님께서도 불편하신 몸으로 참석하셨다. 큰 고모님께서는 내가 사는 곳에서 50리 정도 떨어진 시골에 홀로 살고 계신다. 효심 지극한 자식들도 넷이나 되지만 소위 ‘잘난 자식 나라 자식’ 이라 자주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나도 어릴 때 고모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자주 찾아 뵈어야하지만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고모님을 뵙고 오는 길에 그 동네 경로당이라도 잠시 들렀다 오면 고모님께서 친구들에게 조카 자랑을 하염없이 하신다는 소문이 바람결 타고 나에게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다시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가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화수회에 참석하신 고모님께서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한 달 전에, 사람의 정이 그리워 버스 타고 50리길을 오시어 내가 근무하는 학교 교문 앞에서 한나절 동안 앉아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셨다가 되돌아가셨다고 했다. 밤 10시가 되어야 퇴근하는 나를 어떻게 만나겠는가? 연세가 90이신 노인이 버스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고 학교까지 찾아오신 것을 생각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뭐라고 할 말을 잊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 왜 한나절을 밖에서 그렇게 기다리셨느냐’고 하니, ‘퇴근하면 나올 줄 알고 기다렸고, 또 이 늙은 몰골로 교무실로 들어가면 조카의 체면이 뭐가 되겠느냐’는 말씀이셨다. 교문 앞에서 나의 집무실까지 직선거리로 200m도 안되는데 조카와 고모님간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더란 말인가? 며칠 후 오랫만에 아내와 딸, 두 분의 누님 내외분과 제수씨, 그리고 질녀가 모여 제법 그럴싸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나를 찾아 학교까지 오신 고모님의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숙연하게 듣고 있었는데, 딸아이와 질녀가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이상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끝나자 둘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가 또 금방 미안한 듯이 눈을 피했다. 그러나 진정 눈을 피하고 싶은 것은 나였다. 그날은 나의 입장에서 딸과 질녀에게 내심으로 상당히 캥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고모님께는 죄송하기 그지없다. 내가 질녀들에게 세뇌 교육한 것을 아시기라도 하듯, 그래서 마치 똑 같은 상황을 일부러 연출하신 듯이 나를 찾아 교문 앞까지 오신 고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끄럽고 기가 찰 노릇이다. 나는 그날 두 누님 내외분과 제수씨와 질녀, 그리고 내 아내와 딸과의 식사 모임에서, 교사 초임 2개월 된 질녀에게 어릴 때부터 해오던 큰아빠의 세뇌 교육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큰아빠가 시킨 세뇌 교육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은 그놈의 몫으로 남기고.... 그러나, 공부 중에 있는 두 조카와 두 질녀에게는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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