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이 가슴에만 묻어온 비밀.
산그늘 골짜기에 천년세월이 겨웠던가 보다.
향운香雲을 비껴서 쏟아지는 햇살의 고요.
산자락 바람언덕에서 자비의 미소와 만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랴, 한번은 스치게 될 인연의 틀.
여기 파란지세波瀾地勢의 누지陋地에 부처님 납시었다.
훠이훠이 옷자락 휘저으며 세정世情을 밟고 서는 여래의 행차.
화사하게 돌꽃이 맺혀서 피어날 때를 기다리며 있다.
경주慶州 서남산西南山 선방골 절터에 묻어오는 가을 빛.
여름은 향연으로 끝나고 지난 시간의 자취마다 퇴색의 기억이 뿌려진다.
하나같이 풍만한 몸매의 삼체석불三體石佛, 머리에는 광배를 받치고서 어깨 나란히 함께 중생 계도에 나서는 길. 신라인의 정신세계, 삶과 예술에 대하여 깨달음의 설법을 전하는 중이다.
35번 국도의 내남內南으로 가는 길, 경주 시가지 중심에서 1.4km쯤 되는 곳에 이르러 삼불사三佛寺와 망월사望月寺 절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두 길이 합쳐지는 골짜기를 선방골이라 이름하게 된다.
이곳 일대에는 두 곳의 절터를 비롯해서 다섯 구의 불상과 석탑 두기가 남았다.
불상들은 거의 모두 완전한 상태로 여기저기에 따로따로 누워 있던 것을 3존불 형식을 취하여 한 자리에 세워 두었다.
그러나 탑들은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된 채 잡초더미 속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이를 대충 모아서 탑 같이 쌓아 놓았을 뿐 원래의 탑은 아니다.
이로써 1923년 10월에 국가보물 제63호로 지정된 불상들, 지금 무슨 상념으로 섰을까?
이렇게 현재의 자리에 합쳐 놓게 된 이유는 한원궁 전하閑院宮殿下 일행이 경주에 관광차 오게 되자 당시의 고적보존회 담당 직원들이 유물의 볼거리로 한 곳에 진열한 것인데 처음에는 삼체석불이라 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나중에는 배리拜里삼존불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동경잡기東京雜記』에 따르면 삼체석불이 있는 이 마을 이름을 배리라 하여 불교의 전설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경주부에서 남쪽으로 20리.
신라 때는 부모의 기일忌日이 닥치면 가까이 있는 절에서 명망 높은 고승을 모셔다가 불공을 올리며 재사를 지내는 것이 풍속이었다.
때문에 이날의 재사를 승재僧齋라고 하였는데 어느 날 서라벌徐羅伐 도성의 한 재상宰相이 부모의 기일이 되자 고승이라 차저하는 분을 초청하여 승재를 올리게 하였다.
마침 이날에 초청한 스님의 행색이 말이 아니게 초라한 것을 보고 못마땅히 생각한 그는 이를 무시하여 심히 꾸짖어 나무라기를 ‘네가 무슨 고승이냐’하며 고함지르자 재를 올리던 스님은 말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갑자기 소매자락을 떨쳐 소매 안에서 사자 한 마리를 끄집어냈다.
스님은 홀연히 그 사자의 등에 올라타고 하늘 높이 솟구쳐 바람 같이 사라지는 지라 그제서야 깜짝 놀란 재상은 자기의 사려 깊지 못한 경솔함을 크게 뉘우쳐 맨발로 쫓으며 그를 불러 돌아오기를 간청했으나 이미 고승은 까마득히 멀리 모습을 감춘 뒤였다.
재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날 줄 모른 채 하루 종일 스님 떠난 뒤를 향해 수 없이 절을 하며 잘못을 빌었다고 하여 이 마을의 이름이 배리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설과 함께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 유물들.
일제의 민족문화말살과 인권탄압 정책의 허다한 폐해로 문화재 또한 무수히 훼손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대게는 다 그 본래의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현존의 모양이나마 남아있게 된 것이 어느 한편 매우 다행스런 일로도 여겨진다.
무심히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천의 변화와 함께 연륜이 가져다 준 지난한 아픔의 표본, 어쩔 수 없었던 질곡의 역사 앞에서 그저 마냥 숙연한 생각에 잠길 따름인 것이 못내 서글프다.
문화도 이렇거니와 하물며 사람들의 마음이랴!
험한 세파를 헤쳐 날 동안 그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아파하며 살아야 하는가?
찢기고 할퀸 인생의 상흔들을 매만지며 삶이란 그렇게 성숙해 간다는 것의 진리를 오늘 새삼 느껴지는 날이기도 하다.
삼체석불 대세지보살 앞으로 거쳐 가게 되는 비탈의 그늘진 곳에 해마다 맺혀서 피던 차나무 꽃들의 운둔.
다소곳 내미는 하얀 얼굴에서 이슬 같이 촉촉한 불성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남산의 선방골을 지키며 서 있는 천년의 ‘우담바라’
보았는가? 더께더께 청태로 묻어있는 돌꽃, 그 묵묵히 간직한 말없음의 의미를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