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간에 밤은 적요하다. 더구나 달 떠오는 바닷가, 그 호젓함이랴! 저 해원의 극변으로 치닫는 사영寫影, 편편의 무량수, 바다의 분위기는 늘 쓸쓸하다. ‘대체 바닷물에 산이 둥둥 떠다닌다니 이 무슨 징조인가?’ 신문왕神文王이 일관을 불러 점을 치게 하였더니 이미 돌아가신 선왕께서 동해바다 해룡이 되어 나라를 보호하려고 김유신金庾信을 대신으로 하강케 하여 왕에게 큰 보물을 전하게 될 조짐인 것으로 아뢰는 지라 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대왕암에 문무왕文武王을 장사 지낸 후 수중릉이 마주 내려다보이는 대臺에다 누각을 지었다. 어느 날 여기에서 동해를 내다보던 중에 갑자기 사방에 안개가 덮히고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과 함께 용바위에서 용이 나타나 하늘로 솟구쳤다. 라고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신라新羅 전설을 적고 있다. 이는 양북면 대본리陽北面 臺本里 661번지에 있는 이견대利見臺 이야기로서 수 세기에 걸친 오랜 세월 세간에 회자되어 왔다. 신문왕께서 보았기로 물위에 뜬 산의 모양은 거북머리를 닮았고 그 산 바위 위에 대나무 한그루가 자랐는데 낮에는 두 그루였다가 밤에는 둘이 합쳐 한그루로 되었다고 한다. 그를 보게 된 다음날부터 이레 동안 천지가 흔들리고 소용돌이치다가 마침내 세상이 평온해지자 친히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용이 전하는 검은 옥대를 얻었다. 이때 용이 왕에게 말하기로 “둘의 대나무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로 되기도 하는 것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문무왕과 김유신의 두 혼이 대나무로 화하여 나타난 현상이니 이 대나무를 합쳐 피리를 만들어 불면 곧 세상은 태평 안민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신문왕이 돌아와 대나무를 쪼개어 합쳐 피리를 만들고 보니 널리 알려진대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인 것, 뒷산 송림을 등짐 지고서 하염없이 바다의 끝을 내다보는 집 이견대利見臺, 여기는 늘 그랬듯이 언제나 한가할 따름, 이따금 오가는 관광객들만이 짧은 시간, 잠깐씩 여심을 내렸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해풍만은 단골손님으로 시도 때도 없이 하루 진종일 분주하게 드나든다. 천년의 왕권이 이어지기 까지 신라왕들의 국가 경영에도 걸핏하면 부딪히는 도전세력과 끝없이 교차하는 인간적 고뇌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선왕인 문무왕의 삼국통일 성업이후 나라의 기강 확보를 위해서는 한번 씩 고고적적한 바다에 나와서 드넓은 대자연 바닷가 경치에 잠기어 어지러운 정사를 찬찬히 정리했으리라 싶은 것이 이견대는 그때 당시의 역사적 진실에 대하여 증명하려는 듯 오늘 여기에 꼭히 남았어야 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크고 작은 국책사업 앞에서의 시행착오, 그때마다 도움이 되는 보이지 않는 외부의 힘, 즉 초탈적인 신의 능력이 절실하게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얻게 된 보배가 어쩌면 만파식적이 아니었을까? 파도같이 술렁거리고 폭풍같이 휩쓸리는 어지러운 인간세상, 그 소리, 천지의 동요를 일시에 잠재우는 만파식적의 주술로 하여 신문왕은 재위 12년 동안의 나라살림을 그나마 무탈하게 꾸려왔던 모양이다. 신라의 전역에 걸친 국학의 장려, 어찌 보면 신문왕 이야말로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교육정책에 앞장섬으로서 신라 왕력의 그 가운데에 이름 떳떳이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동해에 해룡으로 변신한 문무왕의 신격인 국정참여는 물론이려니와 건국과 패망에 이르도록 신라는 시종일관 신화적인 요소와 함께 역사 속의 실존국가로 남게 된다. 앞서 언급한 용바위는 문무왕의 장례지인 대왕암 수중능으로서 이견대와 마주 보이는 바다위에 두둥실 전설로 떠있다. ‘끼룩 끼룩’ 바닷갈매기가 무시로 날으는 해변의 봉길리와 대본리 사이 신라는 동해구東海口의 전설로 깨어나 만파식적의 신화 속으로 잠들곤 한다. 그 피리를 보관했다던 반월성半月城의 천존고天尊庫건물은 오늘날 사라져 이름만 남고 어디서 피리소리만이 아련하게 울려오는 허공,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의 세월이 아쉽기 그지없다. 내일에는 우리의 삶도 누구의 입을 통하여 한 토막 노래로 불려 질까? 노래는 언제나 한 가지 전설을 만들어 낸다. 그러다간 어느 날 마침내 신화로 승화되기까지 하는 것, 우리의 현실적 삶이 향기로워야 하는 까닭이 이 때문이다. 오, 이 청량한 초여름 이견대의 밤바다, 조선시대 김해사람 허란許欄의 시 한편을 따라가자. 高臺利見在天東 宿霧初收月一空 鯨波萬里逢山璧 漁火三更蟹舍紅 天光上下浮沈外 日色晨昏出沒中 鰲背群仙今不見 淸遊此席與誰同 동쪽하늘 높이 이견대 솟았구려 자욱한 안개 걷히고 온하늘 밝은 달빛 만리의 큰 물결위에 봉래산이 푸르른데 깊은 밤 고기 잡는 불이 해사에 붉었구나 하늘빛이 새고지는 사이에 낮과 밤이럴세 거북타고 놀던 신선들 이제는 안보이니 여기 그윽히 맑은 자리에 누구와 함께 더불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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