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강과 바다,
한반도 전 지역을 짚어 봐도 경주慶州의 동해구東海口 일대만큼 유서 깊은 산천경치도 드물 것 같다.
토함산吐含山 등줄기를 씻어 내리며 추령골과 장항골이 합수되는 물줄기, 대종천大鐘川은 그야말로 숱한 전설과 함께 긴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일명 스므내(卄川이십천)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이거랑은 여름철 홍수기를 제외한 연중 내내 물이 말라 있기가 일쑤다. 마른 내, 건천이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대종천 강변길을 따라가노라면 파도소리 꿈꾸는 바닷마을 양남陽南 양북陽北 감포甘浦가 나란히 해변으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두둥실 두리둥실
만경창파에 배 띄워라.”
들고 나는 고깃배 소리에 하루해가 뜨고 지는 아름다운 어촌 풍경,
여기는 물날 따라 경기도 달라지는 경주의 이색 지대이기도 하다.
도심에서 34km 떨어진 양북면 용당리陽北面龍堂里의 감은사지感恩寺址, 오래된 옛 절터에는 늘 해풍이 불어와서 약간은 소금끼로 저린 듯한 냄새가 코 속으로 베어든다.
신라 제 30대 문무왕文武王께서 이 절의 공사를 추진하다가 제위 21년에 타계하자 31대 신문왕神文王이 왕위에 올라서 즉위하던 해인 681년에 절의 공사를 추진하고 부왕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
거기 그곳에 국보 제 112호인 동서東西 3층 석탑이 우람한 모습을 하고서 오늘도 단정한 자태로 앉아 고즈넉이 묵상에 잠겨 있다.
바람이 스쳐가고 구름이 스쳐가고 때로는 새들도 쉬었다 가는 여기 감은사지, 시대의 변천 따라 요즘은 도처에서 찾아드는 관광객들의 발자국 소리에 무료함을 달래고 있기도 하다.
이 탑은 암곡리暗谷里의 고선사지高仙寺址 삼층석탑이나 나원리羅原里의 오층석탑과 같이 동일한 조형양식을 갖추고 있는데 상륜부에는 길이가 3.9m나 되는 사각기둥의 무쇠찰주가 하늘로 치솟아 있음이 특징이다.
찰주를 포함한 전체 탑의 높이가 13m에 이르는 신라의 탑 가운데 가장 외형이 큰 탑에 해당하는 신라 통일기의 쌍 탑.
1960년의 석탑 개보수 공사 때에 수레 모양의 사리舍利함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동판의 장식으로 연화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복부의 네 면에 8개의 감실을 장치하고서 면면에는 천부상天部像과 신장상神將像을 안치하기도 했다.
그 중심부에 놓여진 보주형?珠形의 사리탑에는 각 모서리마다 악기를 연주하는 4명의 천인天人과 주악상奏樂像을 덧붙였다.
화려하고 섬세한 이 사리함은 보물 제266호로 지정되었는데 매우 우수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1996년 봄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동탑東塔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탑의 3층 내부에서도 금동제 사리함을 발견했었는데 연꽃 모양의 사리舍利함 중간에는 수정 사리병을 채워두었다.
그 안에서는 순금의 작은 풍경 다섯 개가 나왔고 다수의 사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또한 매우 우수한 누금세공의 제품들로서 국보급에 해당하는 문화재인 것이다.
이보다 앞선 1979년 7월 문화공보부의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 때는 77자의 명문이 새겨진 청동반자와 풍탁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로 보아서 감은사절은 신라의 대가람, 호국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감은사지의 지하 유구로는 해수海水가 드나들 수 있도록 바다와 연결된 길다란 수로가 있기도 했는데 이는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노라고 한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설계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또 대종천에는 관련된 몇 가지 전설이 있기도 하다.
그 하나 고려 때의 일로써 고종 25년(1238) 몽고의 침략으로 하여 왕경내의 황룡사皇龍寺 구층탑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들이 한꺼번에 불타버리기도 했는데 그 때에 황룡사에는 봉덕사 성덕대왕신종의 네 배가 넘는 100톤 무게의 커다란 종이 있었단다.
몽고의 침략군들이 이 종을 탐내어 자국에 가져갈 목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뱃길로 운송하기 위해 이 거대한 종을 겨우 배 위에 옮겨 싣고서 바다로 향할 때였다.
그 때 갑자기 거센 풍우가 일어나 배가 침몰하면서 대종도 함께 수심 깊이 가라앉아 버렸다고 하니 아마도 용으로 화한 문무왕께서 크게 진노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큰 종이 빠졌다고 하여 그 뒤부터 스므내 거랑을 대종천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바 꾸며진 전설인지 사실인지는 훗날 종이 발견될 때에야 비로소 밝혀지게 되리라 본다.
시간에 묻혀버린 과거의 일들, 오로지 세월만이 그 진위여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실상과 허상들이 함께 유실된 전설의 대종천, 강은 또 흘러서 한줄기의 새로운 역사가 된다.
그 역사는 길고 긴 세월에 묻혔다간 더러는 전설로 사라져 잊혀버리기도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끊임없이 거듭되는 인류의 발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