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테지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봄은 비를 뿌리며 저만치로 물러서는데 초록빛 신록의 뜨락에 여름이 짙어오는 광경이 보입니다.
한 쌍의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는 듯 저 창망한 서정의 유월을 서성일 뿐, 황룡사皇龍寺 옛 터에는 지금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습니다.
다만 빈마당 풀밭엔 드문드문 건물의 초석만이 남아서 지난 날 한 때의 영화를 더듬어 적연히 향수에 잠겨 있을 따름입니다.
이렇듯 눈을 감으면 시뮬레이션으로 재생되는 기와집 건물의 회랑, 9층 목탑까지도 우뚝하게 복원되어 사사성장寺寺星長 탑탑안안塔塔雁雁 의 절 풍경, 서라벌徐羅伐이 한눈에 되살아 보입니다.』
지금 이렇게 현장 설명이 가능한, 경주시구황동慶州市九皇洞 320-3외 1백98필지 황룡사지皇龍寺址는 전체 38만3천6백여평의 매우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신라의 절 황룡사는 삼국권내에서 규모가 제일가는 거찰이었다고 한다.
근래 10여년전부터 문화재 발굴조사단에 의하여 발굴이 진행 중에 있는데 안압지에서 분황사芬皇寺 로 가는 들판의 중간 중간에는 거대한 초석들이 땅위에 드러나 있다.
유구의 범위로 보아 이 사찰이 얼마나 크고 웅대했던가는 짐작이 가능하다.
발굴조사에 의하여 전체 가람의 건물 구조가 대부분 파악된 상태에 있는데 중문中門 동문東門 서문西門 금당金堂 강당講堂 회랑回廊 등의 건물 위치가 요연하게 드러났다.
이 절은 사적 제6호로서 신라 제24대 진흥왕 때에 창건한 국찰이었다.
서기 553년 월성月城의 동쪽에 궁궐을 새로 지으려고 땅을 파던 중 땅속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로 인해 궁궐대신 절을 세우고 황룡사라 하였으니 이미 천기가 땅에 내려 있었던 모양이다.
경내에 9층목탑을 조성하였은즉 이때가 선덕여왕 14년(645)이었으니 절을 세우고서부터 장장 93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고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려 때의 고종 25년(1239) 윤4월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9층탑을 비롯하여 절 안의 모든 건물이 동시에 불타버리는 참화를 겪고 말았다.
당시 탑의 높이는 67.5m로서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은 응유 6층은 말갈 7층은 단구 8층은 여적 9층은 예맥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는 바 실로 그 상징성이 뛰어났다.
황룡사에는 신라 3보의 하나인 9층목탑을 비롯하여 여러 보물이 있었으니 또 하나는 장육존불丈六尊佛 이었다.
그 외 대종大鐘은 그 무게가 50만근으로 성덕대왕 신종인 에밀레종보다 4배나 더 큰 종이었다고 하며 그 외는 솔거率居의 벽화와 가섭불의 연좌석과 사리장치, 그리고 또 “우화문雨花門” 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우화문은 당시의 어느 쪽에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매우 장엄 화려한 문이었으리라고 추측되어 진다.
고려 때 학자인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적혀진 바로는 화랑들이 건립했으며 고려 제4대 광종光宗 때 송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호종단胡宗旦도 함께 이 문을 지난 것으로 되어 있다.
우화문이란 과연 어떤 문이었을까?
불교의 경전에서 보기로 우화란 부처님의 설법을 뜻하는 것,
즉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져 비처럼 쏟아지는 부처님의 자비나 은혜를 비유한 법어였거늘 인간은 누구나 다 이 우화의 정서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말한듯 하다.
신라 불교 가람의 거찰 황룡사,
여기 인간의 사악함과 우매함의 변화를 위하여 지혜의 도량으로 통하는 우화문에는 불교의 경전적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성을 아우르는 낭만적 요소까지도 내포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최치원의 이력으로 세워진 의성의 고운사에도 역시 “우화문”과 뜻을 같이 하는 “우화루” 현판이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꽃이란 결국엔 이 세상의 인간적 느낌에 상통하는 현물인즉 어찌 사유의 한계를 초월할 것이랴!
조선시대 학자인 송한필宋翰弼(1534~1599)의 시 한 편 우음偶吟이 스쳐가는 순간, 세상사 모든 것은 다 사람의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던가 싶어진다.
花開昨日雨 花落今朝風 화개작일우 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일춘사 왕래풍우중
어제 내리던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아침 바람에 그 꽃이 진다오
가엽도다 봄날의 수많은 일들이
바람과 비속으로 오고 또 가누나
오라! 인간사 모두가 꽃보라 속 꿈길인 줄 내 지금에야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