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은 늘 한산했다.
이제 막 비상하는 새들, 인기척에 놀라서 날개짓 하는 소리,
물가로 이어지는 여울목엔 파르르 갈댓잎 적시었다.
스름스름 기어서 모래톱에 묻어오는 해 그림자,
아스라이 멀어진 주소를 향해 바람은 애틋이 그리움을 전하고 있었다.
눈감으면 엊그제 같은 환영, 한갓되이 다시 피기도 하여
구름이랴! 산 위로 떠가는 편지에 꽃잎하나 유정으로 얹어 보낸다.
5월의 물빛 서천강 향기,
아카시 꽃냄새 물씬 풍기는 경주,
경주는 그 물빛의 파랑위에 꿈과 낭만을 배 띄우며 살아왔다.
삶의 희열로, 죽음의 비애로 깨끗이 강물인 듯 씻겨 흐르게 하고서 오직 하나 사랑의 승화만을 위해 손을 모으는 사람들,
이 근처의 어디엔가 그 기원으로 남겨진 탑 하나 있을 듯도 하건만 세속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법이던가?
저편의 도심에서 이어진 다릿길,
서천교 아래의 하상에는 이름 모를 신라의 절터가 있어왔다.
여러 가지 역사적 정황으로 보건데 어쩌면 영묘사靈妙寺가 아니었던지?
영묘사는 전불시대의 칠처가람의 하나로서 모래내의 끝에 세워졌다고 하니 아마도 오늘날 사정리沙正里의 서쪽 공고옆을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볼 때에 이 자리는 영묘사터가 맞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삼국유사에 적은 절에 대한 사기의 내용을 보면 선덕여왕善德女王 때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더 정확히 동국여지승람은 선덕왕 원년인 632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이 절터는 물구덩이었으나 두두리豆豆里라는 도깨비들이 하룻밤 동안에 흙으로 메꿔서 사찰을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 외에 많은 전설과 연계되어 있는데 그중에도 특기할 사항이라면 지귀志鬼와 선덕여왕에 얽힌 짝사랑 이야기.
지귀는 신라의 활리活里역 역졸인 사람이었다.
혼자 선덕여왕의 미모를 사모하여 신열을 앓아오다가 말이 아니게 얼굴이 피폐해졌다.
어느 날 절에 불공드리러 왔던 여왕이 이 소문을 듣고서 인편으로 지귀에게 전하였다.
여왕이 이른 대로 지귀는 영묘사의 탑 아래서 앉아 기다리던 중에 그만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여왕이 행차하여 지귀의 잠든 모습을 보고 측은히 여겨 팔목에 감고 있던 금팔찌를 그의 무릎에 가만히 내려 놓아둔 채 궁궐로 돌아가 버렸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난 지귀는 그만 깜짝 놀라 번민이 들끓어 마침내 마음에 불이 타올라 불귀신이 된 것이다.
여왕을 만나리라던 기대의 순간에 잠이 들었고 보니 참으로 얄굿기 짝이 없는 비운이었음을 어찌하리?
어쨋거나 속으로 애태우는 연심이란 눈물이기 전에 뜨겁게 타버리는 열화가 먼저였던 것만 같다.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밤의 세레나데, 오늘도 서천강 여기저기에는 달맞이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곤 한다.
누구의 영혼들이기에 그토록 처연한 모습으로 앉아 찬바람 스산한 강둑에서 수많은 고독의 밤과 씨름하며 지새우는가 싶은 것이 애닲다.
사람은 모두가 다 혼자이면서 동시에 둘이기를 갈망하다가 결국엔 반쪽으로 멸하게 되고 마는 것,
허나 이 어찌 무소유의 원칙에 적용할 것이랴!
하늘빛 서천강은 푸르러 푸르러 이렇듯 목메이게 절규하며 흐르는데
들으라! 그대들이여, 손을 내밀어 맞잡고 보면 꿈같이 아름다워 지는 이세상의 삶,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선의의 덕목 일것이다.
이 대지의 무한한 황량함이 원인 없게 초래된 것이 아닐터.
귀침초 지심을 걷어내며 한발 한발 가까이로 다가서야 하는 것을 아는가?
지금은 여간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상처난 갈대,
이미 지난 겨울에 말라붙어 앙상하게 뼈대로만 서 있는 슬픈 생명인 것을.
아직은 달인듯 별인듯 가녀리게 비쳐오는 빛줄기여! 어시호, 신의 은총임을 사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