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힘의 작용에는 물리적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인류사의 변동에 따라 그 또한 자취가 남게 된다. 이의 자취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어 과거에서 현재로 또 먼 미래에까지 전수되는 속성을 지녀왔다. 때문에 문화의 본질적 가치란 삶과 죽음의 순환을 통해서만이 얻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천년 신라新羅의 도읍지 서라벌徐羅伐을 찾아서 세계의 도처에서 찾아드는 관광객들의 행렬, 그들이 경주慶州에 들어설 때 우선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이 시내의 곳곳마다 솟아있는 거대한 신라무덤을 보면서 부터다. 헤아리면 수천 기에 달하는 고분의 숲, 고분의 도시 경주! 이렇듯 경주라는 곳은 생사공유의 한 영역에서 무덤을 자원으로, 무덤을 상품으로 내세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숙명적 도시가 되고 말았다. 신라인 사후의 열병식, 서악리西岳里 고분군, 그중에서도 태종무열太宗武烈왕릉의 위용이 단연 두드러진다. 서악동 842번지 사적 제20호로 지정된 무덤, 선도산仙桃山의 남쪽 지맥으로 뻗어내린 구릉지대에 나란히 1자로 배치된 5기의 대형 고분, 그중의 하나로 맨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의 높이는 약 13m, 둘레길이가 1백12m로 드문드문 자연석 돌덩이를 호석으로 심어서 흙내림을 방지하겠끔 해 놓았다. 그 선의 흐름으로 연속되어 보이는 능의 곡선, 정감과 여유와 신비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겉치레를 배제한 단순미까지도 내재하고 있다. 마치 고향에 있는 듯 평화롭고 어머니의 젖가슴 같아 풍만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이것이 고분이 풍겨주는 인간심성의 표출이자 우아한 자연미의 아름다움이다. 능의 남쪽 주변에는 금방에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석조귀부 하나가 태종무열왕릉임을 입증하는 명문의 이수를 등에 업고서 신라인의 기백과 정신을 말하며 생동감에 넘쳐나 보인다. 무열왕은 신라 제29대 임금으로 본명은 김춘추金春秋, 흥무왕興武王에 추봉된 김유신金庾信 장군과 함께 나당동맹의 연합군을 조직, 문무왕文武王이 삼국통일을 달성하기까지 튼튼히 부국강병의 초석을 다져 놓기도 했으니 이 또한 무열왕의 크나큰 위업으로 평가된다. 선도산을 뒤로 하여 앞으로는 서천강을 껴안고 오릉지대의 넓은 들과 남산南山을 조망하며 명당자리를 차지한 왕의 유택, 역대 신랑왕릉 중에서 피장자의 신분이 가장 확실한 능이다. 조선의 연산군燕山君때의 학자, 매계梅溪 조위曺偉가 남긴 시문을 통해서 보건데 “쓰러진 빗돌이 황량한 들판에 버려져 있으나 파손과 마멸이 심하여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고 한 것으로 보면 아마도 조선시대중기까지 무열왕의 비신이 주변 어디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건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이니 금치 못할 이 안타까움이랴!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진흥왕릉고와 화계花溪 유의건 柳宜健의 라능진안설 등을 참고하면 서악동 일대의 고분군에 속하는 무덤 중에는 24대 진흥왕眞興王 25대 진지왕眞智王 46대 문성왕文聖王 47대 헌안왕憲安王의 능들도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나 자리의 정확성은 떨어지는 형편이다. 아직은 마른 띠풀에 덮혀 있는 고분의 사잇길을 걸어서 선도산을 오르다 보면 서악동 산자락 92의 1번지 도봉제사桃奉劑祠의 뒷켠에 3층의 모전석탑 한기가 단정히 솟았다. 탑의 서쪽에 인접하여 불권헌不倦軒 황정黃玎의 묘소로 길이 통하는데 그 초입에는 꽤나 큼직한 성혈바위가 흙속에 묻힌 채 4~5m의 상단부를 드러내고 앉았다. 아들을 남게 해달라며 소망하던 집념의 기도처! 옛날 옛날 그 옛날의 청동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서 칠성신께 정성을 드려왔던 민속의 현장이다. 천기를 숭상한 원시적 자연과학, 운명을 송두리째 하늘에다 맡긴 주술적 신앙,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이란 철저히 자기중심적 제도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일대에 분포한 고분들, 신라왕의 주검 또한 이와 어찌 무관했으랴 싶은 것이 운주사의 탑자리가 그렇듯 오리온의 삼태성이나 북극성, 북두칠성 같은 성좌를 유념하여 죽어 서라벌 땅에 행여나 삶의 영화를 재현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수수께끼 같은 가설을 상상하게 된다. 어쨌거나 간에 신라의 임금들이 모여 머무르는 지하왕국, 그들의 고분이야말로 다른 곳 세상 어디에도 잘 있지 않는 경주만의 특별한 간판이자 세계적 브랜드에 해당하는 관광상품의 하나다. 또한 분명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떳떳한 자존심이거니와 아이덴티티, 경주의 체질임에 틀림없지 않는가? 고분은 우리의 얼굴, 경주시민의 절대 자랑이 되는 확실한 이력서이다. 여기 태종무열왕릉에 부여된 비밀의 바코드, 이에 대한 해독과정을 거칠때에 비로소 경주관광화 산업의 문이 크게 열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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