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남사재(지방도로 927호선)에서 지난 16일 오후 5시43분경 노인 30명을 태우고 관광을 다녀오던 관광버스가 경사 40도의 30여m아래로 굴러 떨어져 17명(17일 현재)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당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들은 황성동 유림경로당 소속 노인들로 건강식품 회사가 주선한 온천관광 및 건강체험을 다녀오다 참변을 당했다.
경주시는 사고가 나자 사고수습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사태를 파악하는 한편 유가족들과 협의해 18일 경주실내체육관에서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들을 받고 있다.
한편 조사결과 운전 부적격자가 버젓이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확인돼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어떻게 관광을 떠났나?
입원한 김모씨(73)에 따르면 이들은 유림경로당 최모 회장과 영천의 김모씨로부터 회비 1만원을 내면 온천관광을 시켜준다고 해 협의 하에 받아들이고 16일 오전 9시 황성동 유림경로당 소속 노인 30명이 대구 골드개발관광의 버스를 타고 언양에서 온천욕을 하고 영천의 장수건강원에 들린 후 이중에 11명이 각각 29만원상당의 한약을 지은 후 경주로 돌아오다 사고를 당했다.
▶사고발생 경위와 경찰조사
경주경찰서 교통조사계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관광버스가 운전자의 부주의로 남사고개 가드레일을 넘어 20m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져 전복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교통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17일 오전 11시30분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사고차량(대구 70바 2787호)을 인양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이송 조치했다.
경찰은 피해자는 대부분 중상환자로 먼저 일반병실에 있는 비교적 상해가 가벼운 환자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운전자 모씨는 현재 시내 모병원에서 중상으로 치료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와 환자들은 동국대병원 17명(사망10명, 중상6명, 경상1명), 동산병원 6명(사망5명, 중상1명), 한마음병원 2명(사망2명), 굿모닝병원 5명(중상 4명, 경상 1명), 현대병원 1명(중상)으로 분산 이송돼 안치 또는 치료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운전자 과실부분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차 조사에서 ‘기어 변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운전 중 핸들조작 등에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사고현장에서 나타난 130m가량의 타이어마모자국(스키드마크) 등을 집중분석하는 등 운전미숙과 차량결함 등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장구조작업
경주시소방서(서장 김현호)는 사고 발생신고를 받고 현장에 소방 150명, 의소대 20명, 경찰 70명, 시청공무원 20명을 투입하고 구조차량 4대, 구급차 25대, 헬기 등을 동원해 구조 활동을 전개해 환자를 경주지역의 7개 병원으로 분산 이송했다.
김현호 서장은 “경찰과 공무원들은 차량을 통제하고 소방공무원들은 환자를 구호해 이송을 하면서 연로한 노인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해 안타깝다. 당시 현장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하게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예고된 참사(?)
이번 사고 버스를 운행한 운전자 권씨가 운전을 할 수 없는 부적격자임에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권씨는 지난 91년 교통안전공단 적성검사에서 운전을 하기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재검사 없이 지난해 버젓이 회사에 취업에 운전을 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관광회사 측도 권씨의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왜 피해 컸나
이날 사고 차량은 경사가 40도 정도의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면서 차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찌그러졌으며 버스 좌석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등 추락 당시의 충격이 심했음을 보여주었다. 입원한 김모씨는 “버스가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두세 번 비틀거리다 갑자기 아래로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대부분은 7~80대 고령인데다 일부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시 사고수습대책본부와 유가족 회의
경주시는 사고가 발생하자 사고수습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유가족과 장례절차와 보상 등의 문제를 협의했다.
지난 17일 유가족들은 대책위를 구성하고 시에 장례에 필요한 사항들을 요구했다.
유가족들은 △합동분향소 및 장례식장을 경주실내체육관에 마련할 것 △합동분향소에 따른 제물과 재반경비 제공 △조문객과 유족들의 식음료제공 △분향소 칸막이 설치 △유족들이 따뜻하게 쉴 수 있는 휴식 공간 제공 △합동분향소 대형 현수막 설치 △조의금 접수대 설치 등을 요구하고 추가로 각 병원에 흩어져 있는 시신을 운구하기위한 차량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재웅 경주시사고수습대책본부장(부시장)은 “다른 요구사항은 시에서 전부 수용이 가능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로 인해 조문객들에게 제공하는 식음료가 선거법에 저촉이 되어 선관위와 협의했으나 불가하다고 통지 받았다”며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겠지만 현재로써는 시에서 식음료 제공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가족들은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분개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간 뒤 선관위를 찾아가 정부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해 행자부 비서실의 비공식적인 해결약속을 받고 장례예식장인 경주실내체육관으로 장례준비를 위해 이동했다.
이상효 경북도의회 수석부의장도 “버스회사에서 경비를 우선 지원하고 행자부의 차후 지침에 따라 도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며 유족들을 안심시켰다.
▶보상 문제는 이상 없나?
사고차량은 버스공제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돼 일반 운전자의 자동차 화재보험과 같은 보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개인당 5~7000만원 가량의 보상금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돼나 유가족들이 사고 도로의 안전시설 미비 등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보상 협의가 순조롭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곤 행정자치부장관 방문
지난 17일 오후 4시 이달곤 행자부장관이 경주동국대병원에 방문해 백상승 시장으로부터 교통사고 상황을 보고받고 사고피해자들의 병실을 찾아 위로했다.
이달곤 장관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에 젖어 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중상자들이 많기 때문에 환자치료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 어제 늦게까지 시장과 경찰, 소방, 시의회, 경북도경찰청과 밤늦도록 통화를 했다”며 “내려오기 전에 선관위와 협의를 한 결과 한 마을에 대형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에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법해석이 가능해서 조문객과 유족들에게 식, 음료를 제공 할 수 있게 되었다. 시장이 비용을 선 조치 후 정산하는 것이 좋겠다. 중환자가 많은데 더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료에 만전을 기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가족들 구조작업 문제 제기
지난 17일 교통사고대책본부에서 유족들은 장례절차를 협의하든 중 한 유족이 구조작업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 모씨는 “16일 조카의 전화를 받고 형님의 사고를 알고 현장으로 가고 있는데 조카가 담요가 없으니 이불을 가지고 와라고 해서 집에 있는 이불을 있는 대로 가지고 갔다”며 “현장에 가보니 영하 5℃가 넘는 추운 날씨에 환자들이 매트와 담요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불을 덮고 구호를 돕는 가운데에서도 환자가 많아 금방 예기하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했다. 저체온증으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본다. 구호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분노했다.
이에 대해 김미경 경주시 보건소장은 “병원의 사망원인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환자는 없다고 알고 있다. 압박과 두개골파손 등의 외부충격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국대 이경섭 원장은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두개골 골절, 압박으로 인한 심장마비 등의 외부 충격이 직접적인 사인이다. 저체온증으로 인해 문제가 된 것은 없다. 구급차에는 항상 시트와 담요가 준비되어 있다. 다만 한꺼번에 이렇게 환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병원 생활 25년 만에 처음이다. 이로 인한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추측일 뿐이다. 병원도 많은 환자를 한꺼번에 치료 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 준비 하겠다”고 말했다.
▶위험한 도로
사고현장인 현곡면 남사리 남사재는 영천시 고경에서 경주시 현곡면으로 진입하는 도로로 급경사와 굴곡이 심해 사고다발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유가족 모씨는 “경주시는 안전대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사고다발지역에 안내판과 가드레이만 설치해 놓았다”며 “가드레일은 차량이 추돌했을 경우 튕겨 나와야 하는데 승용차를 기준으로 낮은 가드레일을 설치해 놓아 이번처럼 대형버스가 추돌했을 경우 타고 넘어가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예비 완충장치와 가드레일을 경사면과 같은 경사를 주어 설치 할 것이 아니라 경사가 높은 곳의 높이에 맞추어 설치했다면 이런 대형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주시에 안전대책에 문제가 많다”고 격하게 항의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안전대책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노인들을 유혹하는 약장수들
이번 사고는 노인들이 언양 온천관광을 갔다가 경주로 곧바로 온 것이 아니라 영천으로 둘러 오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유림마을 주민들은 당초 여행경비가 2만여원이었는데 영천 건강매장에 들르는 조건으로 경비가 1만원으로 조정돼 온천여행을 마치고 영천을 들러 오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각 지역 경로당 마다 노인들에게 관광을 보내준다며 개입해 건강약품을 판매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부부 함께 참변, 친구 잃은 슬픔
현재 유림경로당은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이웃과 친구들이 여가를 보내는 곳이다. 이번에 사정이 있어 같이 온천관광을 가지 못했던 노인들도 하루아침에 오랜 친구와 이웃을 잃은 슬픔에 빠졌다.
이번 관광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이들 중에는 부부가 동시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번 사고 관광버스에는 6쌍의 부부가 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들 부부 가운데 유림노인정 회장인 최영원(73)씨와 이금자(68)씨 부부가 숨졌으며 박동우(남, 79), 서남현(여, 66), 이석임(여, 69)씨는 부부가 함께 여행에 나섰다가 혼자 숨지고 배우자들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김영준(70)씨와 이태우(67)씨 부부 등 두 쌍은 함께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다.
▶사망자(18일 현재)
최영원(남. 73세), 황의남(여, 84세), 이임순(여, 80세), 전종삼(남, 71세), 마숙인(남), 양태근(여,75세), 이금자(여, 73세), 박병용(남, 76세), 박동우(남, 73세), 서남현(여, 70세), 이용수(남,71세), 김주호(남, 71세), 송태순(여, 81세), 우분남(여), 이석임(여, 69), 추소돌(여, 88세), 전금숙(여, 76세). 이상 17명.
이성주 /권민수 기자
사진=최병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