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칠2리(內七二里)
태초의 아름다움 간직한 산골마을 ‘내칠’
옻밭 안쪽 ‘안옻밭’ → ‘내칠전(內漆田)’ → ‘내칠리(內七里)’
산내면 내칠리 안옻밭에 있는 마을회관으로 오르는 골목길 담장에 피어난 연홍빛 능소화가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붉은 자태로 길손을 반겼다.
내칠은 생식마을로 유명한 우라리 남쪽 아랫마을로 경주에서 산내면을 거쳐 청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신원리 북쪽 안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다.
오봉산과 장육산이 빚어낸 깊은 계곡에 자리한 내칠은 골짜기의 남쪽어귀는 신원리에, 북쪽 안 골짜기는 우라리 생식마을에 내어준 채 골짜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동쪽은 오봉산을 사이에 두고 감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장육산을 경계로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와 접해 있다. 경주시청에서 38km, 44분 거리이다.
일제 때 왜곡된 마을이름 바로 잡아야
내칠은 본래 옻밭(지금 신원리)의 안쪽이므로 ‘안옻밭’이라 했으며, 이를 한자로 ‘내칠전(內漆田)’이라 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 ․ 폐합에 의해 ‘내칠리(內七里)’로 그 표기가 바뀌었다. 그래서 산 안에 있는 일곱 마을이라 내칠(內七)이라고 했다는 왜곡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내칠 ․ 외칠리 모두 옻칠(漆)자 대신 일곱칠(七)자로 표기함으로써 그 본래의 뜻이 왜곡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꼭 바로잡아야할 마을이름이다. ‘곧은터’ ․ ‘다릿골’ ․ ‘개터’ ․ ‘개밋골’이 내칠1리, ‘안옻밭’ ․ ‘다리미기’ ․ ‘웃산저’ ․ ‘아릿산저’가 내칠2리를 이루고 있다.
내칠1리는 2007년 3월에 이미 소개한 바 있다. 내칠2리는 55가구에 주민수가 110명으로 이중 남자 50명, 여자 60명이다. 이 마을은 벼농사와 고추(1만여 평), 한우(70두)를 기르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안옻밭에 사는 윤복순(90 운동댁) 할머니로 아주 인자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다. 귀가 좀 어두워 소통이 어려울 뿐이지 지금도 집안일은 물론 밭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아주 건강하다. 평소에 주로 채식을 하고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반달모양의 마을지형 ‘달미기’
안옻밭 옻밭의 안쪽에 있어 ‘안옻밭’, ‘내칠전(內漆田)’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육산 동쪽기슭에 있다.
동제 이 마을은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수령이 500백년 된 느티나무와 말채나무가 나란히 당나무로 섬겨지고 있다. 마을어귀 개울가에 있다. (30가구)
다리미기 마을 지형이 반달모양으로 생겼으며, 달을 보러가는 높은 지대에 있어 ‘달미기’, ‘달목’, ‘달항’, ‘월항(月項)’, ‘다리목’이라고도 한다. 주민들은 이마을의 형세가 초승달이었으면 큰 부자가 나는데 그믐달이라 부자가 없다고 한다. 안옻밭 북쪽 산위에 있는 마을이다. (3가구)
산저(山底) 안옻밭 북쪽 산 너머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본래 ‘부싯돌(불을 일으키는 돌)’, ‘붉은흙(색칠 도료로 쓰인 흙)’, ‘금금띠미(채독에 효험이 있는 황금색가루)’ 등 3가지 보물이 난다고해서 ‘삼재(三財)골’이라고 하던 게 ‘산재’, ‘산저’로 변천한 것으로 보인다. 혹은 산 밑에 있어 ‘산저(山底)’, 닥나무가 많아 닥종이공장이 있었다고 ‘산저(山楮)’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마을은 골짜기 위쪽에 있는 ‘웃산저’(2가구)와 아래쪽에 있는 ‘아릿산저’(12가구)로 이루어 졌다. 이 마을이 있는 곧음터 서쪽 골짜기는 길이가 3km에 이른다.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정월보름날에 동제를 지내는데 최근에는 마을에서 술잔 만 올리고 간단하게 치른다.
당나무 이 마을 당나무는 마을어귀 언덕배기에 있는 수백년 된 느티나무다. 마을 주민들은 약 400년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가지 보물 난다는 ‘삼재(三財)골’
안산 아릿산저 남쪽 산으로 마을 앞에 있어 ‘안산’이라고 한다.
쟁반미기 지형이 쟁반처럼 생긴 곳으로 명지로 알려져 묘를 썼다. 평풍더미 어귀에 있다.
쇠뜨미 안옻밭 서쪽 산으로 돌에 철분이 많이 섞여 있는 바위가 있다.
양지삐알 안옻밭 북쪽 양지녘에 있는 산이다.
질옆삐알 안옻밭 서쪽 길옆 산기슭으로 지금은 개간한 밭이 있다.
마당미기 아릿산저 동쪽에 있는 산등성이로 마당처럼 평평하다.
마일(馬日)고개 윗산저에서 청도군 운문면 마일로 넘어가는 고개다. 이 고개를 통해 영천 북안으로도 간다.
서낭미기 웃산저에서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갯마루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쉴고개 웃산저에서 청도군 운문면 봉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산이 높아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이곳에서 쉬어 넘었다고 한다. 운문면 용귀로도 가는 고개라 ‘용귀고개’라고도 한다.
오동고개 웃산저에서 청도군 운문면 오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장잣들 돌무더기에 보물(?)
구룡골 안옻밭 동쪽 골짜기로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한다.
동성자리 아릿산저의 동쪽 가운데 지점에 있는 골짜기다.
뒷밭골짝 아릿산저 마을 뒤(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백정놈밋골 아래산저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어느 백정의 묘가 있다.
삼밭골 아랫산저 서쪽의 장육산 어귀로 옛날에 삼(길쌈)을 많이 재배했다.
산지대골 아랫산저 남쪽 산등성이의 높은 곳에 있는 골짜기다.
절골 아랫산저 북쪽에 옛날 절이 있었던 골짜기다. 지금은 화엄정사가 40년 전에 새로 지어졌다.
지픈골 흉동골 서북쪽에 있는 지픈(깊은) 골짜기다.
큰토골 아릿산저 서남쪽에 있는 토골의 큰 골짜기다.
작은토골 아릿산저 서남쪽에 있는 토골의 작은 골짜기다.
호부래비골 안옻밭 서쪽 길옆에 있는 골짜기로 한 골짜기만 있어 홀아비처럼 외롭다고 붙인 이름이다.
큰골 안옻밭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이다.
새들 안옻밭 앞에 있는 들이다.
장잣들 안옻밭 동북쪽에 있는 들로 옛날에 한 장자가 그의 큰아들에게 물려준 들이라고 한다. 이 들에는 큰 돌무더기가 있는데 그 안에 보물이 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어느 해 주민들이 이를 파려고하자 갑자기 천둥벼락이 쳐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옻물탕 안옻밭 남쪽 큰 골짜기에 있는 약수가 나는 곳이다. 이 물은 옻이나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 인근에서 모두 이용했다고 한다.
쉰질청소 쉰질이나 되는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는 곳으로 안옻밭 동남쪽 거랑에 있다. 지금도 폭포가 있고 작은 웅덩이가 있다.
정종의 빈소 차렸던 ‘망국정’
망국정(望國亭) 조선 정종 때 평해인 황태중(黃泰重)이 왕이 죽자 이곳에 빈소를 설치하고 인근 사람들이 와서 조문하게 했던 곳이다. 안옻밭 서북쪽에 있는 큰 바위 앞에 넓고 경치가 좋은 곳으로 당시 제사를 지냈던 곳을 기념하여 바위에 ‘望國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시묘(侍墓)굴 조선 정종 때 평해인 황태중(黃泰重)이 부친상을 당해 3년동안 시묘하였다는 굴이다. 안옻밭 북쪽 산 정상부에 있는 바위굴이다.
황태중 충효각 조선시대 평해인 황태중의 충절과 효행을 기려 안옻밭 마을 앞 길가에 설치했던 충효각으로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다. 길가에 있던 이 충효각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많았는데 가난한 살림에 제대로 접대를 하지 못해 충효각을 마을 안 골짜기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충효각이 낡아서 무너지고 없다. 그리고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탱화가 있었으나 100여년 전에 화재로 불타고 없다고 한다.
평풍더미 바위가 마치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생긴 곳이다. 웃산저와 아랫산저의 사이에 있다.
건들바우 안옻밭 남쪽에 바위 위에 큰 바위가 포개어 얹혀있어 새가 앉아도 흔들릴 것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머리얹은바우 마치 갓 밑에 쓰는 탕건처럼 생겨 ‘머리얹은바우’라고한다. 이 바위는 노적가리처럼 생겼다고 ‘노적바우’라고도 한다. 아릿산저 앞에 있다.
선바우 웃산저에 있는 선바위로 영험있는 바위로 알려져 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불선바우’라고도 한다.
굴바우 아랫산저 남쪽 산 중턱에 있는 범이 살았던 굴이 있는 바위다. ‘범굴바우’라고도 한다.
농기계 공동 보관시설 및 버스승강장
내칠은 깊은 산중에 자리한 산골마을로 수려한 산세와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마을이다. 따라서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처럼 주민들도 소박하고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녔다. 이 마을의 인심과 단결력은 다른 마을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라고 한다.
현재 이 마을은 운문댐 상수원보호지구 지원 사업으로 가로등 설치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산간마을이라 집들이 좁아 농기계를 집에 보관하지 못하고 논에 그대로 방치하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마을의 농기계를 공동으로 보관할 수 있는 농기계 보관 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이 마을은 버스승강장이 없어서 이용에 불편이 많다고 한다. 버스승강장 설치를 바라고 있다.
이 마을출신으로는 강홍조(53 국민은행 지점장), 김영생(53 경주새마을금고 전무), 정순돌(50 성주군청 건축과장) 등이 있다.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이병률 이장, 김윤식 새마을지도자를 비롯한 마을주민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