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민간외교의 선구자 한. 중 여성교류협회 하영애 회장을 만났다. 품위 있는 외모에 지성을 겸한 깔끔한 매너로 국내외를 망라해 활동하고 있는 하영애 회장은 경주 안강 출신이다.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 신라시대 세여왕의 통치스타일 비교연구’는 당시에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요즈음,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의 통치스타일과 생애, 당시의 시대상황을 연구 비교한 위의 논문이 재거론 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하 회장이 내세우고 있는 여성의 지위향상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도 깊숙한 맥이 닿아있다는 느낌이다. 하영애 회장은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이며 한국정치학회 한중학술협력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사단법인 한중여성교류협회 회장, 사단법인 한중우호협회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부회장 역임) 국제관계위원장, 동아시아 여성포럼실행위원, 밝은사회 국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유엔여성지위위원회 NGO대표 역임 등 중앙무대에서 큰 역할들을 맡고 있다. 개인의 명예보다는 우리나라의 여성, 나아가 세계의 여성 권익 신장 등에 관심을 둔 하영애 회장의 행보는 늘 당당하면서도 분주하다. 어떤 일에 뜻을 두면 머뭇거림 없이 계획하고 실천해 사회와 두꺼운 신뢰를 쌓게 된 것이 오늘의 하 회장을 있게 한 결과라는 주위의 전언이다. 학창시절부터 군인이 꿈이었던 하영애 회장은 여군 장교로 임관해 대위 계급장까지 달았다.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위해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당시 여군 장교의 결혼은 허락되었으나 아이는 가질 수 없다는 규정) 대만으로 유학해 8년간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을 맡아 기른 시모님과 뜻을 펼치도록 적극 지원해준 부군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들이었다. 건국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었으나 세계 100대 대학교인 국립 대만대학교는 특히 박사과정 학생들을 맹훈련시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혹독한 학문연마의 시간들이 현재 후학을 키우는 학자로서는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으며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하 회장의 오늘을 있게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하영애 회장은 중국에 관심 있는 학자, 사업가, 주부 등으로 구성된 한중여성교류협회를 창립하게 된다. 한중수교 2주년을 맞은 1994년 3월이었다. 오는 19, 20일 포항에서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있으니 많은 성과와 함께 역사의 한 탑을 쌓은 셈이다. 그야말로 한중여성교류협회는 국가를 능가하는 민간외교단체로 앞장서왔다. 8년간의 유학생활로 중국은 하 회장에게 있어 제 2의 고향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귀한 사람이었다. 진실로 중국을 이해하고 상호간의 상승작용을 이끌어 낼만한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을 터였다. 중국대사관의 이빈 대사부인인 진일빙 여사(대사관 부녀회장)의 공식 초청으로 협회 회원들과 중국 여성 외교관 및 가족들이 함께 하는 한중문화교류, 중국 현지에서의 중국정부 펑 패이 윈 주석 등 고위 관리와 김하중 주중 한국대사, 기업인 등 300여 명이 참석한 수교 10주년 행사와 ‘한중여성 경제세미나 및 청소년 문화예술교류’, 매년 ‘한중여성 양국언어 이야기대회’, ‘외국인 서울 문화체험 주부도우미 육성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중국어 회화, 외국인홈스테이, 외국인 가이드 등 무료교육, 체험학습을 통한 한국문화 알리기 등의 활동으로 지난 2006년에는 서울시 우수단체 표창을 받았다. 하영애 회장의 발자취를 짚어보기엔 지면이 작다. 열정적인 봉사활동, 여성당선 할당제도 도입 등의 학문 연구, 여성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국민포장’이라는 훈장을 받았고 ‘주한 중국대사관 감사장’, 2004년 안강제일초등학교“올해의 동문상”수상등과 함께 학문적으로도 많은 저서와 논문이 있다. 가족으로는 시모님과 부군 백건표씨와의 사이에 장남 성우씨, 장녀 진아씨 남매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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