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익은 1970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없었던 현실이 원망스러워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다 소년원에 가기도 했다. 가난에 대한 절망과 반항의 결과였다. 스무살에 또 다시 폭력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다.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아버지가 그에게 보여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먹여주고 재워주는 경주 남산탕에서 일하게 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물을 받고 저녁 8시까지 구두 닦고, 등을 밀었다. 그는 친한 친구의 부친이 목욕탕에 들어오자 창피해 숨어버린 적도 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오직 “돈만 벌자” 라고 맘먹고 하루 12시간 강행군 했고, 하루에 100여명의 때를 민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월 172만원씩 적금을 넣었다. 20년전 일이다. 손발이 갈라지고 진물이 나오는 고된 시간을 견디며 때밀이로 4년간 일했다. 세상의 무시와 조롱 속에서 그렇게 숨 죽여 살았다. 때론 칭찬과 격려를 해 주는 이들을 만날 때면 세상의 원망이 조금씩 녹는 느낌을 받고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구성원으로 세상과 소통이 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24세 때 인생을 전환점을 맞는다. 성실하게 일 해온 그를 지켜본 목욕탕 손님이 고철장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모아둔 돈으로 고향의 부모님께 집을 지어 주고 남은 돈으로 1톤 차량을 구입했다. 목욕탕 때밀이에서 고물장수로 변신한 것이다. 그의 성실함은 고물업계에서도 통했다. 거래업체의 간부에게 신임을 얻어 그의 도움으로 무담보 1억원을 차용해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고물업계에 ‘손명익’이란 이름을 알리게 된다. 당시는 철강 재료가 귀중한 자원이었으며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50%에 육박했다. 그러나 고물장사는 능마주의나 실패한 사람이 하는 일 정도로 인식하던 때이다. 그러나 그는 공장 운영상의 문제로 또 수감되는 불운을 겪는다. 그런 와중에 회사는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려오던 그는 수감생활을 통해 것을 얻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옥석을 가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책을 통해 새로운 직업에 대한 철학과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출감 후 그는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그래서 천북에 철강회사를 세우고 열심히 일했다. 지금은 매출 4000억원이 넘는 동종업계 2위인 회사로 성장했다. 아무도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시절 이름도 없이 “어이”로 통했던 그가 지금은 당당한 (주)성호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된 것이다. 그는 2010년 8000억원 매출이 목표이다. 철스크랩으로 지금 전기로를 계획 중이다. 전기로에 철을 녹여 다시 철강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전략을 수립하여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황성동에 100여 세대가 넘는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다. 그가 단순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환원하고자 그리고 직원들에게 보금자리를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손명익 대표 프로필 1. 이름 : 손명익(孫明翼) 2. 생년월일 : 1970년 10월 9일 (음) 3. 학력 : 문화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 수료 4. 가족사항 : 배우자(나지은㈜성호스틸 대표이사), 1남(성호)1여(여정) 5. 연혁 1994년 11월 대호철강 설립 2002년 10월 ㈜성호기업 설립 2004년 03월 ㈜태일테크 인수 2006년 03월 ㈜성호종합건설 설립 2007년 04월 ㈜성호스틸 설립 2007년 08월 ㈜동국정공 인수 2007년 03월 ISO9001, 14001 인증 획득 2007년 11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선정 2008년 07월 경상북도 신성장기업 표창 6. 경력사항 現 ㈜성호기업, ㈜성호종합건설, ㈜성호정공 대표이사 現 철스크랩공업협회 이사 現 용황초등학교 운영위원장 現 서라벌이업종교류회 사무국장 現 천북지방산업단지 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이채근기자 114dd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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