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 서른 둘
오전에는 한문선생님, 오후에는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 - 정환신씨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조용히 봉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굴은 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 뜻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십이년을 이웃의 아이들과 어른· 직장 동료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문으로 다가 간 정환신(53)씨.
이십육년 전 기관사로 첫 출발을 한 그가 한문을 접한 것은 선친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한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선비였던 아버지는 항상 책을 가까이 했고, 곁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고 했다. 홀로서기가 준비되지 않은 즈음에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그가 원하든 삶은 살 수 없었지만 기관사가 된 그의 직업에 감사한다고.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은 지금 평생을 철로로 인해 아내와 장성한 두 아들을 가정이라는 따뜻한 둥지에서 살았으니 나머지 인생을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부족한 것도 넘치지도 않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은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던 차에 직장생활로 접었던 책을 다시 폈고, 이십여년을 독학으로 공부했던 한문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광고문을 붙였다.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이라 여기며 시작한 일이지만 검증받지 못한 이력으로 아이를 맡기는 것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고 공개수업을 해 보였다고 한다. 혼자 아는 지식보다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고 말하는 정환신씨는 아파트 경비실에서 처음 학부모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작을 했다.
사십여명의 아이들을 무료로 강의하면서 공짜라서 책임감이 없다고 할까봐 더 열정적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어 보이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공부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이라 학부모들이 마련해 준 여섯 개의 책상이 감사했다고... 그만의 독특한 공부방법은 오십여년전 일본에서 사용한 것처럼 부수를 이해하면서 글자를 조각조각 나누고 조합하는 거라며 직접 글자를 적어가며 설명해 주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했다.
‘나를 최대한 활용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걸고 싶을 만큼 눈앞의 이익보다는 퇴직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다고 했다. 시련이 기회를 주듯이 스스로 일거리를 만들어가는 그가 한문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평상시에 하는 강의 뿐만 아니라 여름과 겨울방학 동안 하는 무료 특강에 사람들이 몰라서 못 오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홍보가 힘들다고 했다. 오랜 시간 노력한 경험들이 노하우가 되어 큰 자산이 된 만큼 직장에서도 지속적으로 봉사를 하고 싶다고.
현재 경주기관사 사무실 삼층에서 매주화요일 오전에는 초급반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중급반 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직장에서의 충분한 배려 때문에 꾸준히 봉사 할 수 있어 더없이 고맙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구와 부산역에서도 유휴시설을 이용해 세 시간의 휴식시간을 나누어 강의하고 싶어 하는 정환신씨. 토요일에도 장소와 인원이 주어진다면 그의 시간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즐기면서 가르치는 그의 열정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 종류의 봉사 가운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나눌 뿐이라는 그는 내가 좋다고 하지만 남들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서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고 한다.
그를 보면서 봉사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기관사라는 직업의 고마움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회를 더 밝고 따뜻하게 할 것이다. 그의 열정적인 강의는 항상 기차처럼 기적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향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