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 오영철, 총괄주무 김찬연 남산과 포석정 등 문화유적과 넓은 곡창지대, 토마토 등 시설작물이 함께 하 는 탑정동은 오영철 동장 외 13명의 직원이 동민을 가족같이 여기며 지역발전 과 앞서가는 선진행정구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연혁=1973년 7월 시 조례 제469호에 의거 사정동과 탑동이 통합 탑정동으 로 개편되었고, 1975년 10월 대통령령 제7817호에 의거 월성군 내남면 율동 1, 2, 4리와 배리 1, 2리가 탑정동으로 편입되었으며 1986년 5월 경주시 조례 제 1219호에 의거 서악동 제8통(율동3리)이 편입돼 지금의 구역을 이루고 있다. ▲지역여건=내남면, 월성, 황남, 중부, 선도동을 경계로 하여 경주시의 관문 인 톨게이트가 위치하고 남북으로는 경부고속도로와 동해남부선이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시내에 인접한 구릉 평야지대에 비옥한 토질과 알맞은 기 후여건으로 미작을 중심으로 참 토마토 등 시설채소 집단재배지역으로 유명하 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남산과 신라건국의 설화를 간직한 나정과 양산 제, 오릉, 창림사지등 60여점의 주요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전통과 역사를 간 직한 지역이다. ▲유래 및 문화유적 △사정동 : 사정(沙正)은 맑은 물이 흐르는 문천가에 있는 마을로 부드럽고 고운 모래가 많다하여 불리어졌고, 『구역거리』는 일제때 이곳에 경주역이 있 었으므로 그 후 역이 있던곳이라 하여 구역이라 불렀다.『국당』은 사정 남쪽, 남천가에 있는 마을로 나라에서 제사 지내는 등이 있었다고 한다. △탑동 : 탑리(塔理)는 탑말, 탑동이라고도 한다. 신라때 담암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는데 절은 없어지고 절터에 탑의 흔적이 남아 있으므로 탑리라 불렀 다 △배동 : 배리(拜理)는 삼릉의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외와(外臥)에 있는 큰 벼슬아치 집에 제를 올리는데 그 집의 풍속에 따라 스님이 술잔을 먼 저 올려야 하므로 이 사람 저 사람 마땅한 사람을 고르다가 그만 시간을 넘겨 버릴 지경이 되었다. 마침 길을 가는 한 중을 하인들이 사정을 해 모시고 왔으 므로 주인이 만나보니 의복이 남루하고 행식이 말이 아닌지라 불쾌하게 여겨 도로 보냈다. 그런데 순식간에 중은 온데 간데 없이 주인의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예사 중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주인이 크게 깨닫고 사람을 풀어 되 쫓아 보니 지금의 배리 마을 뒤편(큰절골)에 있는 절로 들어갔다. 뒤따라 온 주인과 아랫사람들이 문밖에 엎드려 절을 하며 사죄하였다 하여 그후 사람들 이 배리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율동 : 신라때 염불사라는 큰절이 있었는데 이곳의 지세가 목마른 말의 형상이므로 말이 물을 먹도록 상제와 하제의 두 못을 막아 염불지라 하였다는 데 상제를 안못, 하제를 바깥못이라 불렀다. 밤나무가 많았다 하여 율리라고도 한다. ▲2001년 주요 사업추진 성과=마을안길 포장공사 등 소규모 주민숙원사 업 17건에 5억5백만원을 투자했고 상하수도 관련 2건에 1천5백만원, 농업기반 조성 하천관리 7건에 1억7천5백만원, 도로 2건에 2억9천5백만원 등 주민이 필 요로 하는 곳에 행정이 미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수시책 △무의탁 독거노인 무료 이미용 실시=매월 넷째주 수요일 관내는 물론 인근 동 노인들을 상대로 봉사단체(회장 박윤자)에서 무료료 이미용을 실시하고 있 으며 경주시 보건소에서도 "신나는 목욕탕"차량을 지원 무료 목욕도 함께 실시 하고 있다. 현재까지 200여명이 혜택을 받았으며 탑정동이 시발점이 되어 전 읍면동으로 확대 실시되도록 홍보를 하고있다. △학생초청 동정추진사항 알리기=관내 초중고 학생을 상대로 봉사행정 및 동사무소 하는 일, 주민불편사항 신고 방법, 기타 전반적인 사항을 홍보 △농산물 직거래 실시=현재 여러 단계로 나누어져 있는 불합리한 유통구조 로 인하여 농민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여 직거래실 시 유도로 소비자는 신선한 품질의 농산물을 제공받을 수 있고 농민은 적정가 격을 받음으로써 농가소득 증대를 기하고 있다. 주요 직거래 품목은 토마토, 딸기 등 시설채소를 경주시 아파트 부녀회, 각종 민간단체에 전화주문 후 배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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