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78년, 세계화단의 중심이였던 파리는 한국의 한 작가를 주목했다. 당시 파리시 당국은 세계적으로 촉망되는 14명의 다른 나라 작가와 함께 한국의 화가 손동진에게 ‘프랑스 명예 예술가회원’ 자격을 부여했다. 이 영예스러운 사건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있는 일이었으며, 그는 프랑스 정부가 제공하는, 파리 교외에 1천오짜리 그림을 걸 수 있는 화실과 40여평의 아파트를 제공받고 오직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됐다. 이 행복한 공간은 파리의 예술성좌에 그가 하나의 별로서 차지하고 있는 확고한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한 점이기도 한 것이다. 예술계에서 작가의 논평에 대해 인색하기로 알려진 프랑스의 르 피가로(Le Figaro)지는 1980년 3월 14일자에 손동진의 작품을 크게 실으면서 ‘한국의 화가 손동진의 그림들은 기하학적이고 상징적인 모티브(motive)에 의해 구성된, 다채로운 광채의 면 직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라고 썼는데, 이것은 추상속에 어떤 구상적인 대상을 느끼게 하는 오묘한 조화의 구성을 지적해 준 것이리라. 화가 손동진은 1921년, 경주시 노동동 235번지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경주에서 보내면서, 그는 여느 아이들처럼 반월성에서 달밤에 그림자 놀이를 즐겼고, 경주의 산천을 신명나게 돌아다닌 토박이 경주사람이다.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솟구치는 예술에의 열망을 감당할 수 없어 단신 밀선으로 일본에 도착했다. 물론 일본에 도착하기전 몇 해동안 그는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조선미술전람회에도 2번의 입선(1943,44년)을 하기도 했지만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세계미술의 신사조를 열망한 그는 국내에 머물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열정적인 노력으로 국립 동경예술대학 미술학부에 입학했고 1952년 졸업당시에는 동경예술대학 미술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1년을 수료하고 1954년 9월에 그는 홀연히 파리로 향했다. 현대회화에 대한 욕망은 그를 파리에 입성케 했으며, 그곳에서도 유명한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4년을 마치게 된다. 이 4년동안 그는 ‘파리 국제미술전’, ‘파리 앙데팡당전’, ‘까뉴국제 화화제’, ‘DeauviLle 국제전’에 출품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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