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터는 ‘일부’ 묘터는 ‘감산’이 명당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의 그림자가 짙어가는 가운데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취임했다. 화합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리더십으로 전 세계인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오바마의 행보가 지구촌에 희망과 평화를 안겨다 주었으면 한다. 일부는 옛날부터 부자마을로 잘 알려진 마을이며 ‘나날이 부자가 난다’고 하여 ‘일부(日富)’라고 했다고 한다. 옛날 이 마을에 배부자가 살았는데 만석군이었다고 전한다. 일부는 산내면소재지에서 20번지방도를 타고 청도방면으로 약 3km 가량 가다가 외칠에서 왼쪽(남쪽) 들판을 가로질러 난 농로를 따라 약 4km 정도 들어가면 깊은 산골짜기에 펼쳐진 마을이다. 문복산(1013.5) 준령이 빚어낸 깊은 골짜기에 마을을 이룬 일부는 문복산을 사이에 두고 청도군 운문면과 산내면 대현리에 맞닿아 있다. 일부는 골짜기 안쪽의 ‘지푸내’, ‘거산(巨山)’, ‘산수(山水)’, ‘재궁골’ 이 1리를 이루고, 어귀의 ‘일부’, ‘괘일(掛日)’, ‘장자골’이 2리를 이룬다. 2006년 장수마을 선정 일부1리는 2006년에 장수마을로 선정되어 경주시로부터 3년 동안 해마다 5000만원씩 1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경로당 옆에 고사리작업실을 비롯한 심천쉼터 정자, 산수쉼터 정자 등을 건립했고, 거산마을 찜질방도 공사가 마무리 중이다. 이 마을은 총 98가구에 인구 170명으로 주로 벼농사에 의지해 곤달비(2ha), 고추(12ha), 고사리(3ha) 등을 재배한다. 한우는 200여 두 기르고 있다. 경주시청에서 39km, 50분 거리이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송우생(89 유천어른) 할아버지와 류원통(89 울산댁) 할머니가 동갑내기로 두 분이 모두 아주 건강하시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류 할머니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아주 낙천적인 성격이었으며 시종 일관 농담으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지금도 담배를 즐겨 피우고 화투도 잘 친다고 한다. 깊은 골짜기 냇가 마을이라 ‘지푸내’ 지푸내 옹강산에서 흘러내리는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이라 ‘지푸내’ 또는 ‘심천(深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산수 남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46가구) 동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 약 500년 된 느티나무로 마을회관 남쪽 길가에 서 있다. 1982년에 도나무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산수(山水) 마을 가운데 안강읍 육통리에 살던 창녕황씨(昌寧黃氏)의 산소(묘)가 있어 ‘산소동’이라고 부르던 것이 변해 ‘산수동’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관지’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지푸내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21가구) 동제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동제를 지낸다. 당목 수령 300여년의 느티나무로 마을 가운데에 있다. 1982년에 시나무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거산(巨山) 마을 주변지형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거미처럼 생겼다고 하여 ‘거무골’이라 부르던 것이 ‘거산’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또 큰 산 밑에 있다 하여 ‘거산’, ‘거산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산수 동남쪽에 있다. (18가구) 동제 이 마을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 당목 본래 수령 500년이 넘는 오래된 느티나무를 당목으로 섬겼으나 50여년전 4명 정도가 들어가서 앉아 놀 정도로 큰 구멍이 난 나무 안에 거지들이 들어가 불을 지피다가 불이 나 나무가 타 죽었다. 지금의 당목은 10여년전에 후계목으로 20년생 느티나무를 새로 심었다. 재궁골 옛날에 백씨(白氏) 가문의 큰 재실이 있었다고 하여 ‘재궁(齎宮)’이라 하던 것이, 나중에 ‘재궁(才宮)’으로 되었다고 한다. ‘재공’, ‘재동(才洞)’, ‘와궁동(瓦宮洞)’이라고도 한다. 산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14가구) 신라시대 심원사 임진왜란 때 불타 심원사(深原寺) 이 절은 신라 제37대 선덕왕(宣德王) 2년(781)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1957년 그 자리에 새로 세웠다. 지푸내 동남쪽 골짜기에 있으며 5층 석탑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없다. 심원사(深原寺)터 사리탑(舍利塔) 심원사 남쪽 산기슭에 있는 사리탑으로 본래 절 북쪽 골짜기에 있던 것을 10여년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 4기의 사리탑이 남아 있다. 마당미기 거산 북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해일 때 마당만큼 남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박마치미 재궁골 북쪽에 있는 산이다. 박매산 지푸내 동쪽에 있는 높이 455m 산이다. 옹강산(翁江山) 지푸내 남쪽에 산내면 일부리와 청도군 운문면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832m의 산이다. 해일 때 물에 잠기고 옹기만큼 남았다고 한다. 판지미 거산 남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7~8가구 살았는데 김신조 간첩사건으로 독가촌 정리 때 없어졌다고 한다. 배너밋재 거산에서 지푸내 동남쪽의 심원사로 넘어가는 고개로 마치 배가 드나들 정도로 골짜기가 밋밋하게 연결되어있다. 산내 우중골에서 밀양까지 배가 지나다닌 것처럼 골짜기가 연결되어 ‘배넘이고개’라고 한다. 삼거릿재 심원사 남쪽 골짜기에서 청도군 운문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삼거리티’, ‘삼거리치(三巨里峙)’, ‘심원령(深原嶺)’이라고도 한다. 배너미재 넘어 남쪽에 있는 고개로 언양, 청도, 산내로 가는 길이 삼거리를 이룬다. 아부텃재 재궁골 동쪽에서 대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아부텃재’, ‘아부현(蛾扶峴)’, ‘일부령(日富嶺)’이라고도 한다. 오릇골재 지푸내 서쪽에서 청도군 운문면 오릇골로 넘어가는 고개다. 산내에서 밀양까지 뱃길처럼 골짜기 이어져 도착골 지푸내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뒷골 산수 마을 뒤쪽에 있는 골짜기다. 못골① 산수 남쪽에 못이 있는 골짜기다. 못은 일제시대 때 막았는데 사라호 때 터지고 없다. 못골② 지푸내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못이 있어 ‘못골’이다. 점등골 지푸내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토기점이 있었다고 한다. 문둥골 재동 북쪽에 문둥이가 살았다고 하는 깊은 골짜기다. 큰 문둥골 재동 북쪽에 문둥골의 큰 골짜기다. 작은 문둥골 재동 북쪽에 문둥골의 아래에 있는 작은 골짜기다. 송계골 지푸내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안골 거산 저수지 남쪽 안에 있는 골짜기다. 열나흘골 산수 북쪽 즉 마당미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왜 열나흘골인지는 모른다. 오릇골 지푸내 서쪽에서 청도군 운문면 오릇골로 넘어가는 오릇골재 아래에 있는 골짜기다. 옹갱잇골 지푸내 서남쪽에 있는 옹강산 아래 골짜기다. 은냇골 재궁골 북쪽 골짜기로 ‘이냇골’, ‘이낫골’, ‘은천곡(銀川谷)’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4가구가 사는 마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이곳에는 은천곡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절안 지푸내 동쪽 심원사 안쪽에 있는 골짜기다. 피밭골 재동 동쪽 아부테 옆에 있는 골짜기로 피밭이 있었다고 한다. 사디짐이 거산 안골에 사기점이 있었던 골짜기다. 지금도 사기조각이 많이 난다. 불당골 거산 동쪽 골짜기로 옛날에 절이 있었다. 화장골 심원사 북쪽 골짜기로 스님들을 화장하던 곳이다. 목탁바우 심원사 동쪽 산등성이에 있는 큰 바위로 돌로 두드리면 목탁소리가 난다고 한다. 범바위① 심천 동쪽 심천거랑 가에 범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국이 바위다. 범바위② 심천 남쪽 산기슭에 범이 앉아 있는 형국의 바위로 입 아래턱이 떨어지고 없다. 쉰 마지기의 큰 밭 쉰마지기밭 지푸내 남쪽 저수지 밑에 있었던 50마지기의 큰 밭으로 지금은 경지정리하고 없다. 갈밋들 산수 남쪽에 있는 들이다. 도른정 거산의 북쪽에 있는 들로 지형이 굽어서 돌아다닌다고 ‘도른정’이다. 박맷들 박매산 아래쪽에 있는 들로 지푸내 동쪽이다. 새들 지푸내 북쪽에 있는 들이다. 새징걸 옛날에 큰 부자가 살았던 집이 있었다는 산수 서쪽에 있는 들이다. 이 집은 손님이 많아 귀찮아진 주인이 어떤 스님에게 방도를 물으니 신원에서 이 집이 보이기 때문이라며 북쪽 산을 돋우면 손님이 끊길 것이라고 해서 산을 흙으로 도왔더니 그 뒤로 집안이 망하고 손님도 끊어졌다고 한다. 아릿들 산수 아래쪽에 있는 들로 지금은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윗들 산수 위쪽에 있는 들로 지금은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중봇들 산수 동쪽에 있는 들로 지금은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큰들 거산 북쪽에 있는 큰 들로 지금은 경지정리로 없어졌다. 마을발전에 기여한 문명득 공덕비 의곡초등학교 일부분교 1940년대에 지푸내에 개교한 일부초등학교는 1993년에 의곡초등학교 일부분교에 편입되었다. 현재 전교생이 8명이다. 거산못 거산 동남쪽에 있는 못으로 ‘거산지(巨山池)’라고도 한다. 이 못은 1970년대에 막았다. 이냇골못 은냇골에 있는 못으로 일제시대에 막았다고 한다. 절안못 절안에 있는 못으로 일제시대에 막다가 해방으로 중단되었다가 50여년 전에 완공했다. 5년 전에 다시 확장했다. 새징걸보 산수 서쪽 새징걸에 물을 대는 보다. 문명득선생공덕비(文命得先生功德碑) 문명득은 1919년 영일군 송라면 하송리에서 태어나 1975년 일부 재궁골에 이주해왔다. 선생은 특용작물재배와 새마을사업으로 잘사는 마을 가꾸기에 앞장섰으며, 마을안길포장과 버스노선개설 등으로 주민생활개선에 기여한 공이 많아 1991년 4월 25일 이 마을 주민들이 공적비를 세웠다. 글은 김종섭이 짓고, 최창윤이 썼다. 마을 진입로 포장공사 빨리 했으면 물 좋고, 산 좋고, 부자 마을인 일부1리 주민들은 마을 진입로 포장공사를 빨리했으면 하고 바랐다. 경지정리 할 때 주민들이 부지를 희사하여 길은 확장해 놓았는데 포장공사가 아직 덜 되어 불편이 많다고 한다. 이를 빨리 했으면 한다. 또 의곡2리에서 일부로 넘어오는 수국재 2차선 공사를 진행하다가 중단되어 있다. 약 1km정도 남았는데 이를 완공했으면 한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고종달(68 전 영천초등학교 교장), 김태찬(68 예비역 육군중령), 권상윤(65 전 탑정동장), 박순철(48 육군중령) 등이 있다.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권상규(62) 이장, 김용수(76) 노인회장을 비롯한 주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김거름삶 사진 최병구 기자 정리 이채근 기자·이남미 간사 자문 허계수(족보도서관장)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