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31일 경주에 또 하나의 조용한 변화가 있었다. ‘금장역’ 간판이 내려지고, ‘서경주역’이 자리를 대신했다. 철도를 이용해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혼란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 해 3월부터 지역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설문조사와 공청회도 거쳤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행정 절차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몇가지 점에서 선뜻 수긍하기 어렵고 마음도 신산하다. 서경주에는 지명의 역사성이 없다. 옛 역이름 금장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초롬히 녹아 있다. 날아가는 기러기도 쉬어갈 정도로 맑고 아름다운 늪에 어린 역사와 전설이 얼마나 많은가. 선사시대부터 바위그림 새겨 하늘에 제사 지내며 개인과 집단의 소망을 빌었고, 신라시대에는 금장사란 절이 있었고, 금장대란 누각을 지어 인간을 논하고, 자연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김동리의 명작 ‘무녀도’ 배경 또한 이곳 금장대와 예기청소 아닌가. 이런 역사성을 포기하고 굳이 서경주로 하려면 지리적으로라도 합당해야 할 텐데, 금장을 서경주라고 보긴 쉽지 않아 보인다. 경주 시가지의 서쪽인건 맞지만, 경주 서쪽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건천, 서면, 산내 지역을 서경주라고 부르면 몰라도. 나아가 몇년 남지 않은 고속 전철 시대가 되면 서경주란 이름이 더욱 우스꽝스러워지지 않을까. 고속 전철 경주역이 완성되면 철도 교통 중심축이 그 쪽으로 옮겨갈 것인데, 그럼 그 때도 금장역을 서경주역이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그 때 가서 또 이름을 바꿀 것인가. 경주역을 경유하지 않고 금장역을 거쳐 곧바로 포항으로 오고가는 22편 철도 이용객들에게 이곳이 경주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면 몰라도, 금장역을 서경주역으로 바꾼 것은 역사성도 없고, 지리적으로 어색하고, 2,3년 후에는 우스꽝스럽다. 지금이라도 재고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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