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을 지나 불국사 가는 길. 대로를 달리다 보면 ‘해 뜨는 동쪽 밝은 언덕’이란 뜻을 지닌 ‘새등이요’를 만날 수 있다. ‘기만이 없고 본심으로 행동하고 옳은 것은 가지고 그릇된 것은 버려야 맑다’는 뜻도 가지고 있는 ‘새등이요’에서 무초 최차란(84) 선생의 성품이 그대로 느껴진다. 첫 만남. 눈빛에서부터 거부할 수 없는 기가 느껴졌다. 듣던대로 가히 기인의 모습이다. 올해 여든넷을 맞은 선생은 처음에 유청이라는 호를 쓰다 꿈속에서 무초라고 쓰라는 지시를 받아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한다. 거친 손등을 만지다 손바닥을 만져보니 여든 줄에 든 어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보들보들 했다. 단아하고 자신에 찬 모습은 여느 젊은이가 곁에 있어도 당당하게 보인다. 유난히 건강을 챙기시는 무초선생은 “내가 할일이 너무 많으니까 절대 죽어서는 안된다”며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살게 해 주는게 자신의 할 일이라고 했다. 선생은 영일군 기계면 미현리에서 동학의 시조인 최제우의 형인 최세우의 5대손으로 삼대째 옹기를 굽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고 한다. 깊은 산골에서 옹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도 동학의 박해를 피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으니 오늘날 선생님의 삶의 목표인 민족혼과 자립정신은 어릴때부터 몸에 베인 것이리라. 어릴적 고향에서 40명의 인부가 움직여야 할 만큼 큰 가마가 산더미 같은 솔잎볏가리를 다 태웠다며 그 타는 불빛을 보고 그릇의 질을 판단했던 친정 어머니를 회상하는 선생의 눈언저리에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옛날에는 그릇과 곡식을 물물교환을 했는데 작은 그릇은 그 그릇만큼의 곡식과 바꾸고, 큰 독은 그 만큼의 곡식으로 바꾸는 형식으로 행해졌다 한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었다던 선생이 가장 싫어 했던 말은 ‘학교가지 말라’는 거였다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곧추세운 허리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게 앉아 계신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선생이 민예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막사발이라 불리던‘정호다완’이 일본에서 왜 국보가 되었나를 알아보다가 차도를 알게 됐다고 한다. 쓰다가 이가 빠지면 개밥그릇으로나 쓰이던 우리네 막사발이 어떻게 일본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그 내력을 알아보니 차도에 쓰이는 차의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 일본의 차도가 우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깨달았다. 차실의 초가모습이나 벽에 내놓은 봉창 그리고 방을 들어가는 데 놓인 심방석이 다 우리나라 문화였다. 선생의 깨달음으로는‘정호다완’ 막사발이 그 당시 일본에서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차 문화의 정신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그 가치가 돋보였다는 거였다. 막사발의 정신을 알기 위해 직접 사발을 구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때가 마흔이 넘은 때. 현재 ‘새등이요’가 있는 이곳의 흙은 질이 너무나 좋았다. 오직 막사발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전통 가마를 만들고 흙을 연구하고, 불을 연구하며 혼신을 바쳤다. 회전원리가 좋아 물레로 시도를 해보니 잘 됐고 노래를 불러가며 작업을 해 25년을 일본에 계신 스승에게 보였지만 ‘아니다’라는 대답이었다고. 5년이 지난 이후 마침내 일본의 국보가 된 막사발의 철학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정호다완, 막사발이 소중하게 대접받았던 것은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고, 내려갈 곳도 없는 사기장들의 무심작의 결정이었다. 그릇을 잘 빚어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없는 사람들의 본심이 그대로 투영된 그릇, 그것이 바로 막사발이었다. 막사발은 놓고 보면 당당하고, 들고 보면 우아하고,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같이 아름답게 변화하고, 손에 닿는 부드러운 촉감은 그 무엇에 비길데가 없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 들었지만 그녀의 굳은 의지로 병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황토의 신비를 체험했다. 흙의 근본 원리를 알게 되면서 우주의 원리를 터득했고, 차도가 곧 우주의 원리임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차도에 연결시켜 차도를 정립을 했다고. 흙과 불, 물과 바람의 결정체인 도자기는 그 시작에서 완성까지 우주원리에서부터 생활 세계로 이어지는 흐름을 구현하고 있다. 지수화풍으로 구축된 가마는 모든 동물의 자궁과 같은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흙의 형물이 가마속에서 그 모양새를 갖추어가는 것은 인간과 다를바 없다. 차완은 우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갖추어진 증거물이며 우주 원리로부터 생활 세계에 까지 그 철학을 담고 있다. 선생님이 주장하시는 차도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실행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이 차도구 속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직접 도자기를 구우면서 하나의 차완이 완성되기까지의 실행을 통해 얻게 된 산 체험이다. 이후 25년이라는 세월이 또 흘렀다. 작업한 그릇을 들고 살아 계신다면 한번 더 스승을 찾아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오랫동안 연구한 자연의 사계절인 춘하추동을 나타내는 12다완을 지난 유월에 세상에 선 보인 이후 여든넷의 나이에도 여전히 사흘 밤낮 가마에 불을 지피려는 무초 최차란 선생님!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기 목숨을 던질 수도 있어야 하고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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