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그림 가운데는 책거리 그림(冊架圖)이라는 정교한 채색화의 독특한 유형으로 그려진 그림이 있다. 근래에는 민화로 분류하여 격이 낮은 그림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정통화의 장르를 벗어나고 있음에 대한 편견이며 회화의 본질을 무시한 식견에 불과하다.
물론 민간에서 모방해 대충 그린 그림이 있기도 하지만 그 시원의 그림은 상당한 기예를 가진 화원급의 화가가 고급 채색과 재료를 사용하여 그린 뛰어난 그림들이다.
조선시대의 사랑방은 안채와 떨어져서 가부장(家父長)의 거실로 쓰였고 흔히 서재를 겸했다. 선비들은 그곳에 문방구나 여기를 위한 기물 이외의 다른 것을 두는 것을 꺼려했고 오직 학문을 위한 서적을 소중히 다루었던 것이다.
책거리 그림은 이와 같이 유교사회의 사대부 취향에서 비롯되어 글공부를 적극 권장했던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요즈음 홍콩과 서울의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 작가 중에 홍경택이라는 화가는 ‘서재’란 제목의 그림으로 일약 유명해졌으며 옥션 추정가를 크게 웃도는 고액의 낙찰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음 그림은 작년 6월 서울옥션에 출품되었던 그의 그림 ‘서재’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조선시대의 책거리 그림을 떠 올리게 되었고, 바로 현실을 반영하는 시대적 아이디어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학문 또는 지식으로서의 책은 현실에서 떠밀린 존재로 전락한 대상이며, 인간생활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림의 구도적 특징은 아주 단순하다.
박스 형태로 만들어진 책장은 표정 없는 육면체로 아무렇게나 쌓아둔 상자 같으며 여기 꽂힌 책은 생기 잃은 색깔로서 살아가는데 별로 필요치 않은 느낌으로 그냥 꽂혀 있을따름이다. 그러나 책장의 중요한 부분인 가운데 공간에는 보란 듯이 붉은 화분에 싱싱한 화초들이 자라고 있다.
이제 책은 화분보다 바깥으로 밀려나간 우리생활에서 의미를 잃은 존재이며 이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현실로서 동시대의 메시지임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