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화원 경내 일명 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성덕대왕신종 비각이 있다. 이 건물은 언제 지어진 것이며 어떠한 역사적 과정이 있었을까? 신라 33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의 아들 경덕왕은 황동(黃銅) 12만근으로 종을 만들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이 부왕의 유지를 계승하여 마침내 종을 완성하니 혜공왕 7년(771)이다. 신종 제작을 시작한지 20년 세월이 흘렀다. 12만근을 현재 무게 단위로 환산하면 19톤에 가깝고, 전고(全高)는 12척(3.66mm)이다. 제작 과정이 그만큼 길었다는 말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주조했을 것이다. 당시 모든 과학자들의 지혜와 기술을 총 동원하여 완성시킨 이 신종은, 신라 전성기의 최대 걸작품이며 국민적 염원을 담은 결정체였다. 신종은 지금 경주세무서가 있는 북천 제방 쪽에 있었던 봉덕사(奉德寺)에 매달았다. 신라 이후 고려를 거치면서 이 신종은 어떻게 관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임오년(1462)에 매월당 김시습이 경주에 와서 봉덕사 신종을 찾으니, 절은 폐허로 변했고 종각은 무너졌다. 가시 덩굴에 반쯤 묻혀 있는 신종을 보고, 목동이 막대기로 때려 울리고 풀을 뜯던 소들이 뿔로 떠받들며 갈았다고 글을 남겼다. 경진년(1460)에 영묘사에 새로 종각을 지어서 옮겨 달았다. 영묘사는 경주부 서쪽 5리에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 후 영묘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정묘년(1507)에 다시 남문 밖 봉황대 아래로 옮겼다. 종각을 읍성 남문 밖으로 옮긴 이유는 군사를 징집하거나 성문을 열고 닫을 때 종을 치기 위해서다. 병술년(1826)에 부윤 임안철이 부임하여 종각을 보수하였다. 이때 절목(節目)을 만들어 종각 관리자를 배치하여 수호하고, 타종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등 세부항목을 정하였다. 곧 야간 통행금지 때 28번, 해제 때 33번을 쳤는데 이것은 하늘의 28수(宿)와 33천(天)의 의미에서 따온 숫자이다. 정유년(1897)에 이르러 부윤 권상문이 다시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1915년에 봉황대 아래에 있던 종각을 현 경주문화원 경내로 이건하였다. 당시 종각을 왜 옮겨왔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신라 유물을 한데 모아 박물관을 세우려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975년에 이곳 목조 종각은 그대로 둔 채 신종만이 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목조 건물 종각은 언제 지어진 것일까? 종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종각을 어떻게 지어 종을 쳐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종각과 종소리는 그 만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봉덕사 종각은 고증할 수 없지만 영묘사로 이건할 때 지은 종각이 지금 종각의 기본 모형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종각의 외형적 건축 양식은 단층 목조 토기와 지붕이다. 정면과 측면 모두 3간이고 너비가 75㎡(22.6평)이다. 내부 중앙에 네 개 기둥을 세웠고, 가운데 다시 두개 기둥을 더 세워 중력을 버티게 했다. 상층부에서 내려오는 기본 골격은 3중 종횡으로 축조하여 하중을 적절히 조절하고 분산하였다. 두리기둥에 주심포(柱心包)를 얹었고, 주칠을 했을 뿐 단청은 하지 않았다. 기둥 사이에는 목재로 창살 모양의 기둥을 세워 보호막을 삼았고, 동면에 문짝을 달아 필요할 때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 남아있지 않는 조선시대 종각의 전형적 건축 양식이다. 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건물 구조의 설계와 공간 배치도 등 상세한 연구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실사를 통해서 우리 선인들의 우수한 건축미와 과학성을 규명하고 또 전승해야 할 일이다. 사족(蛇足)하면, 국립경주박물관의 현재 종각은 하루속히 헐고 다시 목조 건물로 지어야 한다. 콘크리트 건물은 계절에 따라 냉열(冷熱)의 극심한 온도 차이가 있어서 동철(銅鐵)은 쉽게 부식하거나 파열될 우려가 높다. 신라 최미(最美)를 자랑하는 신종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현재 보존 상태는 신종의 문제 발생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감마저 없지 않다. 옛 종각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보다 종각을 새로 짓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말이다. 때를 놓친다면 신종의 원음(圓音)은 끝내 원음(怨音)으로 울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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