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에서 불국사 방향으로 오다가 코오롱호텔이 있는 곳에서 좌회전을 해서 내려오면 나무로 만든‘천마공예연구소’간판이 있다”며 전화를 통한 첫 만남에도 자상하게 설명해 주던 송범 박학연 선생(52). 겉치레 보다 내면을 중요시 하는 선생의 성품처럼 간판도 자연그대로의 모습이라 초행길에 잠시 헤맸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푸근한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얼른 오라며 손짓하는 그에게서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기가 느껴졌다. 열두 살에 일본 교토로 건너가 조각을 시작하여 40년 동안 한결 같이 목공예와 함께 하고 있다. 많은 후진을 양성하고, 목공예 조각 기획전을 20여회 개최한 송범 선생은 나무를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고 했다. 천년을 건너온 나무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고, 새 삶을 열어 주는 그의 손길은 산파의 손길과 같았다. 나무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 또한 사랑하는 외손녀의 사진을 바라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 본 적 있느냐?”며 나무를 쓰다듬던 그의 얼굴이 미소년처럼 감동을 불러 왔다. 전시장에 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의 손길이다’라고 느꼈다. 자연목을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송범 선생의 작품세계에 빠져 들면 장인으로서의 고집과 투혼이 읽혀지고 신비로움과 무한한 감동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지인이 보내 왔다는 귀한 차를 “많이 마셔야 한다”며 찻잔이 비워지기가 무섭게 다려 주시는 자상한 모습에서 첫 만남의 낯설음이 잊혀졌다. 자신은 오래전에 모든 욕심을 버렸다며 행복해지고 싶으면 비우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그로인해 마음의 평화와 외로움을 함께 얻었고,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는 그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조각칼을 잡는다고. 세계천연기념물인 흑단목은 돌처럼 단단하고 구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것으로 만든‘목조미륵 보살반가사유상’은 선생의 대표작이며, 그 불상에서 빛을 발하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선생의 혼이 아닐까? 장인에게서 느껴지는 열정과 예리함에 기가 질려 작품으로 자꾸만 눈길을 보내면 그만의 재치와 자연인으로서의 넉넉함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이끌어 주었다. 그는 아내에게 늘 미안했다고 한다. 마음을 담아 몇 천 년을 건너 온 주목으로 장롱이며 반닫이, 장식장들을 만들어 주었다고. 세상에 하나 뿐인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욕심을 불러 일으켰다. 먼 훗날 그것 또한 그를 대신하는 얼굴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보문 근교 1만평의 부지에 세상에 하나 뿐인 세계 최대 규모의 와불을 조성하는 것이 그가 바라는 꿈이며, 그 속에 10만개의 불상을 손수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문화는 정직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대대로 후손에게 남길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보겠노라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 작품으로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설립 취지대로 그 기회가 주어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열반에 들기 하루 전의 평안함을 만끽하는 부처님의 자애를 표현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의 위안을 얻기를 바라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엿 보인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뛰어난 예술인을 발굴해 예술인촌을 건립하는 것도 그가 바라는 일이다. 사람과 역사가 함께 상생하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그 길이 멀기만 하다. 경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의 마음처럼 우리나라의 자랑거리가 되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 매김하는 그날까지 송범 선생의 섬세한 손에는 조각도가 들려 있을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중한 작품으로 승화하고 일찍이 무소유의 자유를 자연과 더불어 실천하는 그의 혜안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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