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이냐 보존이냐. 그 때문에 요즈음 옥산서원 동네 주민들 중에는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농사가 좋아 농장(80평)이 딸린 옥산의 작은 주택에서 출퇴근을 하는 친구로부터 며칠 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옥산 독락당 뒤편에 국보인 정혜사 13층탑이 있다. 그런데 그 탑의 기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전화가 왔다. 일본인 친구가 와서 서원과 독락당을 보여주고, 탑까지 갔었는데 탑의 기단이 보이지 않아서 확인해보니 탑 주위를 흙을 메우고 고른 흔적이 역역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가보니 과연 그러했다.
얼마 전에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을 읽고 기단의 중요성을 알았던 터라 더욱 놀랐다. 우리의 옛 건물은 왕궁부터 초가삼간 주택까지 모두 먼저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던 것이다. 사찰의 탑 밑 부분을 기단이라는 것만 알았지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의 건축 양식이 그런 줄은 처음 알았다. 그런데 정혜사 탑의 기단을 흙으로 묻어버리다니, 누가 그랬을까?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친구의 말을 빌면 옥산리 주민들의 고민이 또 있다.
마을 앞 도로의 폭을 두 차가 서로 교차할 수 있을 만큼 넓히고 논을 주차장으로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도로로도 살고 있는 주민들은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고, 대형 화물차와 버스도 옹색하지만 다니는데, 마당이 길 넓히는 데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통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촌은 점점 비워져간다. 옥산에도 젊은 사람은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60세 이상 노인들뿐이다. 그이들이 돌아가시면 농촌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농촌이 보존되려면 도시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야 한다. ‘소농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고 한 일본 사람의 책도 있다. 농촌이 사라지면 큰일이다. 도시에 갔던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면 시골은 시골다워야 한다. 적당히 불편하면서 옛날 정취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시골이 도시처럼 되면 누가 굳이 시골에 찾아와 살려고 하겠는가?
‘감응의 건축’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지만, 솔숲 앞에 너른 주차장을 만들고, 관광객들은 걷거나 우마차를 타고 마을에 들어와 서원 등을 구경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마차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게 하면 동네 노인들에게는 일거리를 제공하는 일이요,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천천히 시골의 정취를 느껴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