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성실을 생활신조로 살게했다 “독일에 있었다면 연구원이나 지도자의 길을 걸었겠지요. 지금하는 공부는 새로운 사업 구상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강동면 단구리에서 태어난 권오근 (주)두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는 안강중을 졸업할 즈음 부친을 따라 상경해 중앙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1년여 동안 인천에 있던 염료회사에 근무했다. 당시 그가 다녔던 회사는 독일에서 원료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던 곳으로 연간 600번이 넘는 실험을 해 보았지만 독일과 똑같은 색을 낼 수 없어 화공에 관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에 가보고 싶어 독일행을 하게 된다. 장남이었던 그는 독일 아헨공대 대학원 화학공학과를 수료할 즈음 부친의 별세로 귀국했지만 35세의 나이로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다행히 친구들을 만나 ‘가스관련 일을 배우면 독립하기 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93년 (주)웅산엔지니어링에 입사한 그는 10년을 근무하며 실력과 노하우를 축적해 2002년 4월 기계설비, 가스시공업체인 (주)두성엔지니어링을 설립하게 된다. 한시도 쉼 없이 달려온 권 대표도 고향만 생각하면 아쉬움과 그리움이 늘 가슴을 적신다고 했다. 권 대표가 서울에서 고향을 찾게 된 계기는 세진에너지와 일을 하면서였다. “그곳 직원이 고향을 묻기에 경주 ‘안강’이라고 했더니 ‘우리 회장님도 안강 분이신데?’ 하길래 그 자리에서 면담 신청을 했고 당시 재경안강동창회를 이끌고 계셨던 박세춘 회장님을 만나면서 안강 사람들이 서울에 그렇게 많이 와 있는 줄 처음 알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권 대표는 일찍 고향을 떠나서인지 지난 세월동안 고향을 찾는다는 생각도 안했고 당연히 고향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주)두성엔지니어링은 올해 토목공사와 철근콘크리트 분야를 추가 설립했다. 경기불황이 계속되는 시점이라 의미가 더 크다. 가스관련 업체들은 대부분 가스사업만 하기 때문에 경기를 많이 탄다. 권 대표는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지역난방공사에서 하는 열 배관공사에 일찍 진출했다. 타 업체들에 비해 사업이 안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직도 현장에서 두 팔 걷어 부치고 일할 때가 있다는 권 대표의 열정은 남다르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 부산 정관지구와 해운대, 포항, 경주, 안동 2곳, 대관령, 부천 중동과 하남 등지에서 기초 공정인 토목공사와 철근콘크리트, 마지막 공정인 기계설비, 가스시공을 하고 있는 (주)두성엔지니어링은 올해 매출이 60억원을 넘어섰다. 현재 중앙대학교 산업, 창업 경영대학원 기업경영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권 대표는 매출 100억원을 1차 목표라고 했다. “건설업은 평균적인 경영이 어렵고 해마다 목표를 세우지만 의미가 없다. 예측 가능한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권 대표의 2차, 3차 목표가 기대된다. 정직과 성실을 생활신조로 실천하며 살아온 권 대표는 ‘그래야 제대로 된 인정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직원들을 위해 학업의 길도 열어두고 있다. 아직은 지원자가 없지만 학교에 가겠다고 준비를 해오면 누구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권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한국지역난방공사에서 실시한 전자입찰에서 1등을 했을 때”라며 “날아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얼마 전 안동의 공사현장을 가던 길에 지금까지 안보이던 ‘안동 권씨 시조묘소’ 비석이 보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돌아오는 길에 들렀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족은 독일 생활 중에 만난 처형의 소개로 만난 부인 신남주씨와의 사이에 상규, 수현 남매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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