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8일 개최된 ‘방폐장 특별지원금 운용방안에 대한 시민공청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해 3000억원의 운용방안에 대한 경주시의 설명과 토론을 지켜보았다. 이날 공청회가 어떤 결론을 가지고 개최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한 여론수렴 과정일 뿐이라고 했지만 도로건설에 거의 대부분을 투입하겠다는 경주시의 의지를 읽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경주시의 제안 설명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었다.
경주가 처한 현 경제상황과 방폐장 유치를 통해서라도 경주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도로건설을 위해 특별지원금을 사용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도심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서 외곽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에 과연 경주도심의 교통체증이 대도시처럼 그렇게 심한지 의아스럽다.
역사문화도시인 경주는 신속함과 속도감을 요구하지 않는 도시다. 대로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경주 곳곳에 천년역사의 향기를 느끼도록 옛 길을 그대로 둘 필요가 있다. 요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선진국은 여유와 느림의 삶을 즐기는 스로우 시티(slow city)를 지향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 것을 요구한다.
현재 경주 도로망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잘 되어 있다. 70년대식 직선화된 도로건설은 경주의 정체성을 오히려 잃게 만들 것이며 경주시가 구호로 내걸었던 부자도시 만들기와는 거리가 멀다. 세상은 점차 소프트화, 정보화, 콘텐츠화하고 있다.
도로건설을 통한 하드웨어적 보강은 시대적 트렌드와도 전혀 맞지 않다. 오늘날 도시의 성장은 문화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도시디자인을 새롭게 하며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세계 어떤 나라도 가지지 못한 고귀한 천년의 무궁무진한 역사와 문화 속에 미래 경주의 수익원이 있으며 지식과 정보 그리고 인재교육 속에 미래의 성장 기회를 엿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경주에 매우 열악한 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투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구 3만 8천명에 불과한 시골마을 함평이 126만 명의 전국관광객을 불러들이며 성공시킨 나비축제도 결코 큰돈을 들여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 인구 11만 명의 밀양이 폐교를 이용해 연극도시로 그리고 인구 13만 명에 불과한 통영이 음악도시로 부각된 것도 결코 투입된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역발전은 주민참여와 차별화되고 창의적인 생각이 핵심이다. 관의 주도로 도로만 건설하면 간단하고 편리하겠지만 특별지원금 운영에 대한 민간의 참여기회를 더욱 확대하고 경주시민 뿐만 아니라 전국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지원하면 적은 돈으로도 미래지향적인 수많은 사업을 벌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로건설이 해당지역의 교통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지역개발을 촉진하며 침체된 지방건설경기에 일조할 수는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도로건설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 시급한 것은 소득원을 창출해 경주시민이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미래경주의 성장동력 발판을 마련하는데 특별지원금이 사용돼야 한다. 지원금은 국내외로부터 관광객이 몰려들도록 하며, 경주로 국내 인구유입이 이루어지며, 국내외 기업이 유치되도록 사용돼야 한다.
인구증가와 기업유치에 목표를 둔다면 어떤 요인이 인구증가를 가져오며 기업이 입지하기 좋은지를 판단하면 될 것이다. 자녀교육을 잘 시킬 훌륭한 여건을 만들며, 주민의 문화예술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관광객에게는 볼거리와 놀거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많은 기업들이 경주로 이전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인구증가가 경주발전에 가장 큰 요인일 때 중요한 기업과 산업이 없는 상태에서는 인구증가를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지원금은 역사도시로서의 정체성 훼손과 방폐장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길 이외는 달리 살 길이 없다는 심정에서 받는 실로 대가가 매우 큰 돈이다. 충분한 타당성 검토와 지역경제의 장단기적 파급효과의 분석 없이 성급하게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용처에 대한 광범위한 시민여론 수렴, 전국의 전문가 제안과 용역, 그리고 시민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수렴한 다음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만일 먼 후일 있을지도 모르는 안전 위험과 피해를 생각한다면 우리 세대 뿐 만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기금은 비축되어야 할 것이다. 경주시 행정책임자는 현임기내에 사용하고 싶은 생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멀리 보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설령 기금을 사용한다고 해도 원금은 경주발전의 종자돈으로 비축하면서 이자를 활용하여 사업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업추진은 경주시가 단독으로 할 것도 있겠지만 제3섹트 방식의 민관컨소시엄을 구성해 경주외부의 대기업이나 민간의 자금과 아이디어 투입을 유도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야 할 것과 계승할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며, 역사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합리적인 정책결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경주시민 모두가 같을 것이다.
그리고 지원금을 둘러싸고 경주내부의 혼선과 갈등이 외부로 비쳐질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책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며 그 길을 모르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바람직한 결론이 도출되어 꿈과 희망이 있는 경주발전을 이룩할 수 있길 우리 경주시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