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가을바람이 옷속을 파고들 때, 문득 고개를 들면 모든 산들이 ‘오메~ 단풍 들것네’ 소리를 지른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벼를 베던 시절, 논둑에 걸터앉아 먹던 꿀맛 같던 새참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찾은 새천년의 들판에는 비록 콤바인이 일꾼이었던 가족들을 대신하고 있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새참 맛처럼 훈훈한 농심(農心)이 가득이다.
탑라이스란?
품질기준없이 생산되는 전국 쌀 유통시장을 바로잡고, 수입쌀의 국내 시판에 대비해 경쟁우위를 선점하고자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탑라이스’는 전국 42개 단지에서 첨단 농업기술을 총동원하고 엄격한 기술 지도가 병행되고 있다. 이는 최고 수준의 쌀을 생산하고 유통에 있어서도 최고급 품질을 유지하여 소비자에게 최상의 밥맛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탑라이스는 엄선된 쌀로서 소비자가 전국 어디서나 그 품질을 신뢰하여 구입할 수 있는 전국 단위의 브랜드 명칭이다. 생산·품질관리 지침을 살펴보면 그에 따른 품질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다. 먼저, 품종혼입 방지를 위하여 종자 DNA 순도 검사를 통해 지역별로 한 품종만 재배하며 생육환경에 알맞은 이앙과 적정 포기수를 심는다.
토양과 수질 분석으로 꼭 필요한 비료량을 주며 병해충 방제를 최소화해 친환경적으로 재배하고 엄격한 품질검사 기준에 따라 합격된 쌀만 공급한다. 햅쌀 밥맛 유지를 위해 수확 후에도 품질관리를 철저히 한다. 또 밥이 식으면 굳어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단백질 함량을 6.5% 이하로 낮추고 완전미 비율도 95% 이상이 되어야 한다. 싸라기 등 불완전미는 외관상 선호도를 떨어뜨리고 전분이 나와 밥맛을 현저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경주탑라이스 생산단지
경주에서도 이미 2006년부터 농협연합 RPC를 통해 ‘탑라이스’가 출하되고 있다. 품종은 일품벼로 줄기가 단단해서 잘 쓰러지지 않는다. 이삭은 길고 이삭추출이 좋으며 착립밀도는 보통이다. 쌀알은 짧고 둥글며 품질이 뛰어나다. 아밀로오스 함량, 호화온도 등이 낮고 밥에 윤기와 찰기가 있어 맛이 좋다.
배반동 내리단지 경주탑라이스협회(회장 최만석)는 80ha에 105호 농가가 공동육묘와 공동작업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5일까지 포기당 3~4주 양으로 모내기를 마치고, 10a/200kg 입상 규산 살포, 토양검정으로 맞춤 질소비료10a/7kg 사용, 농약 최소 사용은 물론 품종 혼입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단일 보급종인 일품벼를 전량 공급했다. 또 뿌리활력 촉진을 위해 3~4cm로 물을 대주고 마르면 다시대어주는 물걸러대기를 해주었다. 수확도 벼의 익은 정도를 보아 10월 중하순경 적절한 시기를 선택한다.
최만석 회장은 “탑라이스는 너무 잘돼도 않되고 너무 안돼도 탈락이다. 농약을 줄이기 위해 손으로 잡초를 뽑기도 했다”며 “단백질 함량을 낮추어 밥이 윤기가 넘치고 차지며 쫄깃한 밥맛을 자랑한다. 까다로운 재배 지침을 따라 키운 명품쌀인데 아직 시민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주탑라이스는 사업 1년차인 2006년 농촌진흥청 주관 현지실사에서 합격률 90%를 받아 전국 평균 59.7%보다 높았다. 올해도 지난 10월 8일에 있었던 최종심사결과 97%의 농가가 합격을 받아 명실공히 전국 최고의 탑라이스단지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여름에도 햅쌀 밥맛, 왜?
최종심사 합격품은 사전 수매계약에 따라 율동 DSC에서 전량 산물수매를 하고 안강농협 RPC를 통해 유통된다. 탑라이스는 일반미보다 40kg당 4천원을 더 받는다. 올해 농협 수매가는 5만4천원으로 탑라이스는 5만8천원/40kg에 수매돼 농가소득에도 기여했다.
탑라이스는 수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최고의 밥맛을 위해 수분함량을 16%로 맞추고 15℃이하 저온저장, 완전미 95%이상 도정 등의 과정을 밟고 있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제품의 유통을 막기 위해 도정 후 30일 이내의 쌀만 공급하고, 30일이 지난 쌀은 일반미로 판매된다. 이러한 품질관리 때문에 탑라이스는 이듬해 여름까지도 햅쌀처럼 맑고 투명한 빛깔로 입맛을 사로잡는 최고의 쌀이 된다.
현재 탑라이스는 2kg, 5kg, 10kg 단위로 포장, 판매되고 있다. 가격이 높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는 가격을 낮추어 1kg 3천원 기준으로 판매하고 있다. 노서동 소재 경주농협 하나로마트와 인터넷 ‘나라장터’에서 구매가 가능하다고 한다.
경주쌀 대표품종 ‘이사금쌀’로
올해는 제초작업과 과비가 없어 벼가 잘 되었다는 최 회장은 다수확을 중시하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회원들도 이제는 알고 있다며 더욱 관리를 철저히 해서 세계최고의 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경주시농업기술센터 최병석 담당은 “재배와 수확, 현장기술지원 등 탑라이스의 엄격한 재배기술, 품질관리를 이용한 경주쌀 대표품종 단지를 육성할 계획이다”며 “2009년 공공비축미와 농협 수매품종으로 선정된 ‘삼덕벼’를 자체적으로 1천ha 규모의 단지로 조성해 향후 경주시농산물 공동브랜드인 ‘이사금쌀’로 출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과학적인 생산매뉴얼에 따라
따뜻한 농부들의 마음을
먹고 자란 탑라이스”
갓 지어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수하고 따끈한 밥 한 숟가락에 싱싱한 김치 한쪽 얹어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 있을까.
광합성작용으로 산소를 배출한다는 벼가 경주의 들판을 가득 메우면 신선한 공기까지 일석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