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면 이조리에 있는 농협에 가면 옆집 아저씨처럼 정감있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김덕수(57)씨가 있다. 한 마디 말에도 정(情)이 흐르고, 무슨 청이든 다 들어 줄 것 같다. 고향이 강동인 그는 시내생활을 정리하고 농협 뒤에 아담한 집을 장만해 3년전에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의 집 뜰에는 들꽃을 사랑하는 아내 이진옥(54)씨가 가족처럼 가꿔가는 들꽃이 가득하다. 장성한 두 아들의 부재가 들꽃사랑이 되었고, 집안 곳곳에 손수 그렸다는 민화로 옮겨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그의 경주사랑은 남다르기에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에게는 보인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에 역사성을 지닌 문화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던 그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인물이나 행사들을 재구상해서 축제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월명재를 시작한 것이 16년전의 일이다. 신라의 달 밝은 밤 사천왕사 월명스님의 피리소리에 가던 달도 멈춰 들었다는 피리소리를 재현해보자는 뜻에서 ‘누구는 과일, 누구는 막걸리, 누구는 떡 한 접시, 누구는 향과 초, 그리고 피리는 너’로 분담하여 조촐하게 시작된 행사였다. 몇명이 시작한 월명재가 이젠 경주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누구나 올 수 있고, 먹거리가 있어서 더 풍성하고, 뒷풀이가 재미있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하나 슬쩍 빌어 보아도 좋을 운치있는 축제다. 그리고 안민가와 찬기파랑가를 지어 시절을 꾸짖었던 충담스님의 뜻을 기리는 ‘충담재’와 못다한 천관녀와 김유신의 애절한 사랑을 기리며 올리는 ‘천관재’, 정월대보름날 간절한 소원을 담아 보는‘달집태우기’행사를 시작한 사람도 김덕수씨다. 그의 바쁜 행보에 늘 함께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운전면허조차 없지만 당당한 남편을 위해 늘 운전기사가 되어주는 그녀의‘나의 주된 일이 남편을 위해 운전을 하는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예쁜 들꽃 같다. 시외버스에서 우연히 동석한 게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고 한다. 32년이 된 지금도 연애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는 그녀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편지를 유난히 잘 썼다는 그에게 그녀가 더 반했는지도 모른다. 불교와 인연이 깊은 그는 불자들의 봉사단체인 ‘부처님마을’을 만들어 이끌었고, ‘한국·스리랑카 불교 복지협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하는 마음에는 국경이 없다. 불교의 성지인 스리랑카를 여행하다가 그곳 아이들의 헐벗고 굶주린 실상을 보고 우리의 작은 도움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50박스 분량의 옷을 모아 보낸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학용품과 장학금을 전달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집도 세 채나 지어 주었다. 그밖에도 ‘삼국유사절터찾기모임’, ‘경주남산사랑모임’등 많은 문화활동을 펼쳐왔다. 문화운동과 봉사활동에 평생을 바쳐온 그의 행보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의 아내도 든든한 후원자다. 이 모든 일들이 힘들어도 보람은 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보름달처럼 환하다. 한때는 남편의 바깥활동이 곱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두 아들과 생활을 꾸려야 하는 안주인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원망도 해 보았지만 워낙 확고한 신념을 가졌고, 타고난 천성인지라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던 차에 남편을 따라 불교수련활동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남편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가 하는 일이라면 콩을 팥이라 해도 믿어 줄 만큼 믿고 따라 주고,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는 일등 운전기사다. 들꽃같은 아내를 바라보는 반백을 훌쩍 넘긴 그의 눈빛이 가을햇살보다 더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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